<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산문집, 이레, 2003
벽 밖에서 못 박을 위치를 잡기 위해 망치를 두드린다. 아니, 그쪽 말고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기준을 바다로 삼는 이곳 사내들처럼, 나도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나아가 시를 좀더 짧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년 여름,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 육백 밀리미터의 비가 내렸다. 양철지붕이라 소리가 더 요란했다. 전깃불도 잠도 끊겼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들을 만한 소리는 기러기 소리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 나가보면 수십,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 우는 글자. 장관이다.
멈춰 섰다. 등을 돌려 손바닥으로 바람벽을 만들고 담뱃불을 달렸다. 순간 나는 나무처럼 지구를 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꽂혀 있는 나. 천팔백만 평, 여의도의 스무 배나 되는 개펄밭에 보이는 사람은 나와 승준씨 둘 뿐이다.
작년 가을엔 이곳 개펄밭에서 낙지 잡던 주민이 죽기도 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날이었다. 낙지 구멍에 손을 넣고 힘을 쓰다가 혈압이 올라 죽었다고 한다. 또 몇 년 전에는 아주머니가 물 밀려 오는 것도 잊고 조개를 잡다가 지대가 낮은 갯골로 먼저 밀려들어온 물에 에워싸여 죽기도 했다. 죽어 그물에 걸린 아주머니의 허리에는 조개 잡으며 끄록 다니던 고무박이 매댤려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근래 내가 먹은 음식물들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냉장고에 있는 날계란이라도 하나 깨 먹고 나오지 않ㅇ느 것이 후회되었다.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둥이 한 마리를 들고 배를 따 짠물에 흔들어 씹어 먹었다. 에너지를 생각하며, 비렸다.
“아니, 회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초지랑(초장)이랑 이거 한잔 가져오는 건데……”
승준 씨가 소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씨익 웃는다.
“이 형님 회 엄청 좋아하시네. 비린 봄 망둥이를 어떻게 갈매기처럼 먹을 수 있으껴?”
발바리 개와 놀고 있던 진도 강아지가 버섯장 쪽에서 달려온다. 꼬리를 흔들며 오는데 흔들리는 꼬리 때문에 자빠질 것 같은, 봄과 잘 어우러지는 앙증맞은 뜀박질이다.
제방을 올라선다. 바다다. 이 바다를 쭉 거슬러 올라가면 한강이 나오고, 다시 양수리를 거쳐 남한강까지 가 달래강 지류로 접어들면 나처럼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고향 그곳에 있으리라. 진달래꽃 피면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난생 처음으로 사진 한 장 찍어야 할 텐데. 그때 마음씨 좋은 까치 한 마리 슬쩍 내 등 뒤로 날아준다면.
재작년 봄,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으려고 거실까지 들어와 내 삶을 염탐할 때, 나는 몹시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집을 짓지 않는 제비는 딴 곳으로 날아갔다. 나는 못내 아쉬웠다. 적적할 때 제비 소리라도 들어보려던 마음과 나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의 낙담은 컸다.
작년에는 제비를 속여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티브이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를 널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가라잎에 묻힌 까도토리를 밟아 기우둥하기도했지만 달빛이 냉큼 걸음을 붙잡아주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지게에 달빛까지 얹은 아버지와 나는 무거운 지게를 번갈아 지며 몇 시간을 더 걸어서야 산자락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길의 끝 마을길의 시작에, 마을길의 끝 산길의 시작에, 마중 나온 조그만 어머니가 서 있었다. 산길을 벗어나 한 번 쉬고 집에 가자고 했던 아버지와 나는 지게 쉼터를 지나쳐 그냥 집을 향해 걸었다. 나는 뒤따라오는 어머니를 뒤돌아보며 더덕 캔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위의 음식들은 식어 있었다. 몇 번을 데웠던지 졸고 식은 된장찌개는 짰다. 어머니는 산에 간 두 부자가 달이 떠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서 오래전에 마중을 나와 계셨던 것이다. 밥이 식은 시간만큼 어머니도 달빛에 젖어 아버지와 나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 찬 밥에 물 말아 식은 된장국과 장아찌를 먹는 두 부자를 어머니는 안도의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그날 찬밥이 차려진 밥상에는 기다림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 밥을 빨리 먹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비빔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이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얼굴과 손에 기름이 묻어 저리 동작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으리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보따리를 붙들고 주절주절 말하는 할머니의 반지에서 가난의 냄새가 났다. 할머니 집에 가면 그 반지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져 있을 것 같았다. 그 집 안의 냄새를 지배하는 냄새는 할머니들의 반지 냄새일 거라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다.
나는 트렁크를 머리에 이고 서울역을 향해 뛰었다. 지폐와 만나면 침묵하는 동전이 저희들끼리 만나 주머니에서 짤랑댔다.
낯선 도시에서 따뜻한 마음의 여학생과 걸으며 내 몸 전체는 따뜻한 빗방울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역전에 다다르니 기다리고 있던 동료 십여 명과 마중 나온 한전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야 인마, 어떻게 된 거야?”
“늦게 오면 어떡해.”
“빠른데!”
여학생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뛰어가며 나는 들었다. 빗방울과 땅이 부딪히며 내는 박수 소리를.
물은 불에 저항한 만큼 따뜻하다.
나는 은행이란 사회라는 수족관 속에 설치된 산소 발생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공기 같은 돈을 공급하는 곳이 은행 아니던가.
나는 불 쬐기를 그만두고 낚시꾼들이 잡아 등지느러미를 줄로 묶어(낚시꾼들 말로 넥타이를 맨) 강물에 던져놓은 잉어가 묶여 있는, 줄을 잡아당겨보았다.
“인민군들이 후퇴하며 조합창고에 불을 질렀었다. 마을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불타지 않은 벼를 퍼가기에 나도 한 가마니를 걸망으로 걸머메고 지금 기와 공장이 있는 옆 개울 소나무로 막은 방천을 건너오다가 뒤로 자빠졌다. 물에 젖어 볏가마니는 무거워오지 어깻죽지는 빠지지 않지 여기서 죽는구나 발버둥치다가 그만 허리를 다쳤다.”
해바라기 작은 씨가 땅 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자를 캐 올리고 있다고 쓰기도 했으며 죽음만이 실재하고 모든 살아가는 것들은 죽음의 그림자란 시를 쓰기도 했다. 요즘 내가 쓰려고 하는 시는 현재의 삶은 어릴 적 고향에서의 삶의 그림자 같다는 것이다.
“어머니, 아무 도장이나 가져가셔도 투표하는 데 지장 없어요. 그거 제가 시골서 퇴거해올 때 면사무소에 놓고 왔어요.”
“그 도장 찾아와야 한다. 6.25 때 징용 나가 소식 없는 네 막내 외삼촌이 새겨준 거다. 나는 대통령 선거 있을 때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꼭 그 도장을 가지고 투표장에 갔었다.”
대문을 잠근다.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온 달빛과 그림자와 같이 눕는다. 개살구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어머니 마음속에 외삼촌은 살구처럼 신 그림자였으리라.
이 방 안에서 인사성이 가장 밝은 친구는 전기 스탠드입니다. 늘 소녀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리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도 밝고 환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공중에 떠 있는 다섯 개의 배춧잎은 녹색 세계에서 보내온 편지 같습니다.
새들은 개와는 참 반대로 집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개들은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짖기 시작하는데 새들은 울음을 딱 멈추니 말입니다. 그게 짖는 것과 우는 것의 차이겠지요. 겁주기와 겁먹기의 차이고요.
나는 새들이 들판에서 날아온 배춧잎 편지를 다 읽고 첩보 영화에서처럼 쪼아 삼킬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기로 맘먹습니다.
새라디오
집 떠나는 날 어머니는 염색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께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식들이 더 자주 찾아뵙지 않겠냐고 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시다가 선문답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지셨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
…. 나는 밥 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차마 말씀하시지 않은 마음 한자락을 읽었다.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까봐….”
농지가 절대 부족해지면 농촌도 수직 지향적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다면 논도 하나의 건물이 될 것이다. 수십 층의 고층 논이 생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농사짓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다.
나는 골목길을 걸어갈 때면 베르누이의 정리(관 속을 흐르는 유체의 양 = 유체의 속도/관의 단면적)가 생각나곤 했다. 가던 길이 좁아진다고 해서 살아가기에 대한 생각의 양이 적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린 누이가 객지에 나가 몇 년 고생해서 번 돈으로 사준 소를 팔러 가기로 작정한 아버지는, 버스가 오기 두 시간 전에 읍내를 향해 소를 끌고 출발하시며 나한테는 버스를 타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차를 타게 된다는 기쁜 마음과 소를 판다는 착잡한 심경을 뒤섰으며 차를 기다렸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에게 차 조심하라고 부모님들이 주의를 주지만 그때만 해도 차가 귀해 버스가 지나가면 손 흔들어주는 운동을 학교서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고 있다가 산모퉁이 돌아오는 차를 보면 길가로 달려나가 코스모스처럼 손을 흔들며 웃음을 쏟아놓던 기억이 색득하다.
성구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발길을 멈추었다. 오층 건물에서 성구 친구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성구는 길바닥에서 불규칙하게 방향을 바꾸며 떨어지는 비행기를, 땅에 닿기 전에 받으려 하고 있었다.
“성구야, 너 차에 치이면 어쩌려고 큰길에서 위험한 장난을 하니? 집에 가서 놀아라.”
“삼촌 우리 지하실 방에서는 비행기를 높이 날릴 수 없잖아.”
어부들에게 뱃길은 물에 묻혀 있는 물고기를 캐러 가는 길이다.
원래 문자는 물의 글씨가 아니었던가. 먹물이 그렇고 혈서가 그렇고 잉크가 그렇고 관짝에 쓰는 간장에 푼 금분의 글씨가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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