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로맹가리), 문학동네
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내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보고 로자 아줌마는 가족이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 그때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섹스는 루이 14세 때부터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고, 따라서 창녀들이 박해를 받았는데, 그건 정숙한 부인들이 섹스를 독점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의 합법적인 출생을 증명해주는 서류 자체가 가짜였으니까. 이미 말했듯이, 로자 아줌마는 그런 가짜 증명서를 여럿 가지고 있었다. 설혹 경찰이 가택수색을 하러 들이닥친다 해도, 그녀는 자신의 조상 대대로 절대 유태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독일 점령군에 배속된 프랑스 경찰에게 불시에 잡혀서 유태인을 감금해두는 경륜장에 끌려갔던 이래로 철저한 자기 방어태세를 갖춰놓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장담하건대, 몸 파는 여자들도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손님들은 매번 바뀌지만, 아이들은 그녀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로자 아줌마는 아침나절 내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루 종일 울기도 했다. 그럴 때는 실컷 울도록 내버려둬야 했다. 아줌마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렇게 그에게 혐오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아홉 살이나 열 살쯤이었기 때문이거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워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너무 열이 올랐다. 그런 감정은 내 속에서 치밀어오른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녀석이 조금은 밖으로 나가버린 기분이다.
유태인들은 끈질기다. 특히 몰살당한 사람들은 더욱 끈질겨서 자구 망령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때를 잘 맞춰서 지켜보아야 한다. 기적이란 없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마약을 얻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 르 마우트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 마약 주사를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녀석들은 단박에 공짜로 주사를 놓아준다. 자기 혼자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녹색 점이 박힌 노란색 옷을 입은 광대는 넘어져도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주로 줄타기를 하는데, 번번이 실패를 하면서도 웃는 걸 보면 철학자 광대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집 대문 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꼭 거기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달리 가고 싶은 데가 없어서였다. 이런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두세 가지 있었다. 에투왈 광장의 상가로 가서 만화를 보면서 세상만사를 다 잊는 것. 아니면 나를 귀여워하는 피갈의 여자들에게 가서 돈을 몇 푼 얻어내는 것. 그러나 나는 갑자기 모든 게 다 귀찮아져버렸다. 어떤 곳에도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는 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생일이 중요하지, 그 밖의 것, 즉 엄마 아빠의 이름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사람이 아프면, 눈이 커지면서 표정이 풍부해진다. 로자 아줌마의 눈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으면서 자기를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 같아졌다.
누구를 모욕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하밀 할아버지는 점점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더 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였다. 그들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눈을 보면 능글맞은 타조처럼 과거로 숨어들기 위해서 시선을 자꾸 뒤로 돌리는 모습이 뻔히 보인다.
나는 겁이 났지만 내가 그 이유를 잘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사람들이 숨을 쉬듯이 항상 이유도 없이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저능아다. 저능아라나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이다.
나는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여러분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봐줄 만하다. 감상에 젖어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피와 산소가 뇌에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 아줌마는 이제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마치 식물처럼 살게 될 거야. 그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몰라. 몇 년씩이나 희미한 의식 속에 살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절대로 낫지는 않는단다. 얘야,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는단다’ 를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내게는 몹시 우스웠다. 마치 낫는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이제 유태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안 아픈 구석이 없는 할머니일 뿐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할아버지가 알라신을 보러 메카까지 갔었으니까 이제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보러 와야 해요. 여든 다섯 살에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못 하세요?”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탄자를 팔러 다니던 생활을 그만둔 뒤로는 매일 똑 같은 생활의 반복이다보니 백지 위에 백지만 쌓아온 셈이어서 별다른 기억이 있을 리 없었다.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사람들은 모두자연의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연 속의 예비 부속품들인 인간부터 지켜야 할 것 같다.
그는 나에게 로자 아줌마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를 아는 손쉬운 방법을 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는 일어나서 서랍장 위의 거울을 가져왔다. 그것을 아줌마의 입 근처에 대니까 그녀의 입김 때문에 거울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모모야, 나는 의학적 연구를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정신이 들락날락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의학적 공헌을 위해 그런 상태로 수년씩 더 살고 싶지는 않다. 자, 그러니 나를 병원으로 옮긴다는 소문이 오를레앙에서 들려오면 네 친구에게 부탁해서 내게 주사를 한 대 놔주렴. 그리고는 시골에 내다버려줘. 숲에다 버려줘,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 내 엉덩이를 삼십오 년 동안 손님들에게 내주었는데, 이제 와서 또 의사들에게 내주고 싶지는 않아. 약속해주겠지?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마치 어머니와 아들인 양 영수증이 아이샤의 사진 위에 핀으로 꽂혀 있었어요!
“….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 안아보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저를 위해 신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인 척하면서 요구사항까지 들고 나오는 그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저는 부인에게 영수증을 받고 맡겼던 회교도인 내 아들 모하메드 카디르를 원합니다. 저는 어떤 이유로도 유태인 아들은 원치 않습니다.
나는 무슨 추억이 될 만한 것이라도 있을까 하고 그의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주머니 속엔 푸른색 골루아즈 담배 한 갑뿐이었다. 담배갑 속에는 아직 한 개비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서 그것을 피웠다. 그 담배갑 속에 있었을 다른 담배들은 모두 그가 피웠을 테니, 나머지 한 개를 내가 피운다는 것이 뭔가 의미 있는 일같이 여겨졌으므로.
나는 조금 울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게 하지는 말아, 모모야. 그건 절대로 안 도니다.”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는 나를 억지로 살려놓을 거야. 그런 법이 있단다. 뉘른베르크의 법이지. 너는 너무어려서 모를 거다.”
“난 뭘 하기에 너무 어려본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아줌마.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아니에요, 고맙지만 난 이제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뭐라구?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구?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나는요, 자연의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요, 롤라 아줌마.”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은 개나 물어가라고 해요.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어요. 구역질나는 그 따위 것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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