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몇 명에게 해 보셨나요? 하고 누군가에게 문득 물어볼 뻔 했다.
그러나 급하게 혀를 붙잡아 말을 참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현대인들에게
그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질문과 대답일 것 같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적어도 80년대 어린이들이 읽던 책에서의)
사랑은 오직 유일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단 한 명에게만 할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음,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을 몇 일 앞두고서 생각해 본다.
나는 몇 명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였던가?
사랑한다 말했으나 사랑하지 않았던(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사랑한다 말했으나 쉽게 단념해버린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사랑했으나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내가 사귄 사람의 수는 몇 명이었던가?
사귀었으나 사랑한다고 말 하지 않았던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사귀었으나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사랑하지 않았으나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몇 명이었던가?
신입 사원 프리젠터가 임원석에 앉은 하느님을 앞에 두고 프리젠트 하듯이
스펙을 이리저리 맞춰보는데
자꾸만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사귄 사람의 수가 다섯이었다면
사랑한다고 말한 상대의 수는 넷이었고
사랑한 사람은 일곱이었다는 식으로
숫자도 맞지 않는데다가
사랑한다고 말한 넷이 사랑한 사람 일곱 가운데 꼭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흰색 스크린에서 자꾸만 진땀이 흐르고
스팩들이 이리저리 미끈거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수가 정확한 것인지 장담할 수가 없다.
말을
남발하며 살진 않았고
약속을 구슬 따먹기처럼 거래한 적도 없었지만
그리고 또 자포자기한 인생론자들의 말마따나
삶이란 대게는 그런 식(대충, 엉터리, 편할 대로의, 형편에 맞춘, 타협의)이라지만
…
가슴 속에 눈이 잔뜩 내리고 얼어 죽은 거렁뱅이가 쌘 바람에 굴러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시퍼렇고 단단해진 거렁뱅이가 바람에 날려 가슴을 치고 또 치고 그런다.
고등어처럼 파래진 거렁뱅이 시체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뭘 그런 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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