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PARALLEL WORLDS, 미치오 카쿠 MICHIO KAKU, 김영사, 2006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신비는 예술과 과학의 근본을 이루는 진정한 모태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확실한 길만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결코 우주를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시인은 우주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논리적인 과학자는 우주를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의 머리는 여러 갈래로 분열되기 쉽다.
- 체스터턴 G.K Chesterton
힌두문학의 대표적 저술 장 하나인 <마하푸라나Mahapurana>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대체 어디 있었다는 말인가?... 시간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창조되지 않았으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그곳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얻어진 관측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상반되었던 창조신화들이 점차 통합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대의 우주론을 종교적 용어로 서술하면 “영원한 열반의 바다 속에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우주는 거대한 ‘바다’ 속을 표류하는 물방울에 비유될 수 있다.
달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는 약 2초가 걸리므로, 우리는 항상 달의 2초 전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멀리 있는 은하로부터 방출된 빛은 수억 년 내지 수십억 년 동안 우주공간을 여행해야 지구의 망원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빛들은 공룡이 태어나기도 전에 은하에서 생성된 ‘빛의 화석’인 셈이다.
예측된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년이다. 100억 년도 아니고 130억 년도 아닌 137억 년을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은, 이 값의 오차가 1% 이내임을 뜻한다.
초끈이론과 M-이론의 기본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입자들의 바이올린의 끈string이나 북의 막membrane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자들은 그 출신성분이 무엇이건 간에 모두 끈이나 막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 우리의 눈에 각기 다른 입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끈이나 막은 일상적인 3차원 공간이 아니라 11차원 초공간 속에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입자물리학자들은 전자를 무한히 작은 점입자point particle로 간주해왔다. 이 관점을 유지한 채 그 많은 소립자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수백 가지의 점입자들을 새로 도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누가 봐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이론 자체도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끈이론을 도입하면 이 난처한 상황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만일 누군가가 초강력 현미경을 개발하여 소립자 규모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백 가지의 점입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진동하는 끈’뿐이기 때문이다(단, 끈의 진동패턴에 따라 입자의 종류는 달라진다). 즉, 소립자들이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관측하는 기구가 너무 미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작은 끈들은 각기 다른 진동수와 다른 패턴으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만일 이들 중 하나를 골라서 기타 줄을 퉁기듯이 잡아뜯는다면, 끈의 진동패턴이 바뀌면서 다른 입자로(예를 들면 쿼크 같은 입자) 변환될 것이다. 그리고 끈을 또 한 차례 쥐어뜯으면 쿼크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예컨대) 뉴트리노로 바뀔 것이다. 이와 같이, 초끈이론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진동하는 끈’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해 밝혀진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은 끈과 막의 조화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화학은 이 끈으로 연주할 수 있는 멜로디에 비유할 수 있고, 우주는 끈으로 연주되는 교향곡에 해당된다. 또한,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신의 마음’은 초공간에서 일어나는 우주적 공명이라 할 수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궁극적으로 소멸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운명론이 아니라 엄밀한 물리법칙의 결과이다.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가 처음으로 제기했던 이 역설은 “밤하늘은 왜 검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17세기 초에 케플러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무한히 크고 균일하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봐도 그곳에는 무한히 많은 별들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임의의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관측자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무한히 긴 직선을 그리면 무한개의 별이 이 직선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관측자의 눈에는 무한한 양의 빛이 도달해야 하고, 따라서 밤하늘은 엄청난 빛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밤하늘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지독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벤틀리와 올베르스의 주장이 역설로 간주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한히 큰 우주에서 무한히 많은 천체로부터 발생한 중력이나 빛이 서로 더해지면 무한히 강한 위력을 발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올베르스의 역설을 처음으로 해결한 사람은 미국의 추리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였다. 평소 천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죽기 직전에 <유레카Eureka>라는 제목의 산문시집을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천체관측자료들이 난해한 산문시로 요약되어 있다. 이 시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을 잠시 읽어보자.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과감하게 결론지었다.
이 암흑의 세계는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배경복사’라는 마이크로파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인간의 눈이 가시광선 이외의 빛을 볼 수 있다면, 빅뱅의 잔해인 마이크로파가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장관을 매일 밤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빛과 동일한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만일 내가 c라는 속도(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빛은 정지해 있는 전자기장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학에 관한 맥스웰의 방정식에 의하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소년 아인슈타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 빛은 정지상태의 파동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정지된 빛’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논리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의 해(解)에서 맥스웰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의하면 빛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와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진행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좇아가면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 해도,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 c는 모든 관성계(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준좌표계)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당신이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거나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 또는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혜성에 올라타고 있을 때에도 당신이 바라보는 빛의 속도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관측자가 제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해도, 앞서가는 빛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주공간을 표류하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빛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비행사는 우주선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서 빛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만일 이 광경을 지구에 있는 관측자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빛과 우주선이 거의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빛과 속도경쟁을 하고 있는 우주비행사의 눈에는 빛이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c의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다. 우주선이 정지해 있을 때나, 부지런히 달리고 있을 때나, 빛의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뉴턴의 고전역학에 의하면 우주선은 빛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이 문제이지, 일단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기만 하면 먼저 출발한 빛을 따라잡는 것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주선의 속도가 빛보다 느리다 해도, 빛을 따라가면서 측정한 빛의 속도가 정지해 있을 때 측정한 빛의 속도보다 느리게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누가 측정하건 간에’ 항상 동일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고전물리학의 근간에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존의 물리학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대혁명의 전조였다. 그는 신중한 사고를 펼친 끝에,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빠르기로 흐른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관측자의 운동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른다. 다시 말해서, 시간은 뉴턴의 생각과 달리 절대적인 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뉴턴은 시간이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으며, 지구에서의 1초는 화성이나 목성에서의 1초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같다고 생각했다. 뉴턴의 시간은 범우주적으로 맞출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우주의 각 지점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발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물체의 길이와 질량, 에너지 등도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달리는 자동차는 이동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다. 그리고 속도가 빠를수록 수축되는 정도도 커진다. 이 현상은 흔히 로렌츠-피츠 제럴드 수축Lorentz-FitzGerald contraction이라 불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질량이 증가한다. 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시간은 느리게 가다 못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며, 길이는 0으로 줄어들고 질량은 무한대가 된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빛을 제외한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한 시인은 상대성이론으로 유도된 신기한 결과를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피스크라는 이름의 젊은이는
현란한 칼 솜씨의 소유자였다.
그가 휘두르는 칼은 너무도 빨라서
피츠제럴드 수축에 의해
마치 둥그런 원반처럼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그 유명한 공식 E=mc2(제곱)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식에 의하면 극소량의 질량이라 해도 일단 에너지로 변환되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에너지와 질량을 연결하는 비례상수(광속의 제곱, c2(제곱))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이 관계식이 알려진 후, 오랜 세월 미지로 남아 있었던 별의 비밀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별의 내부에서는 핵융합반응을 통해 매 순간마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밝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침대 위에서 매트리스를 가만히 누르고 있는 볼링공을 떠올려보자. 공이 없을 때 침대의 표면은 평면이었지만, 이제 볼링공이 놓인 자리는 움푹 패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링공을 향해 조그만 쇠구슬을 굴려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슬은 똑바로 진행하지 못하고 볼링공의 주변을 공전하게 될 것이다. 뉴턴의 관점에서 볼 때, 구슬이 적절한 거리를 두고 볼링공의 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은 볼링공이 구슬에게 어떤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볼링공이 구슬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서 궤도운동을 하도록 묶어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굳이 ‘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구슬의 궤적이 휘어지는 것은 볼링공에 의해 침대의 표면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이 우리의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이유는 이론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상대성이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특별히 안락한 곳에 살고 있다. 생명체에게 가장 적당한 온도에 다리가 견딜 만한 중력, 그리고 몸이 견딜 만한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 특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공간으로 나가면 별의 중심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겁고 텅 빈 공간은 절대온도 0도(섭씨 영하 270도 정도)에 육박할 정도로 차가우며, 소립자들은 거의 광속으로 공간을 누비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식이라는 것은 지구 근처에서만 통할 뿐, 범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편향된 지식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상대성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일반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냉장고와 에어컨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기체의 부피가 커지면 온도는 무조건 내려간다. 에어컨은 기체의 부피를 강제로 증가시켜서 온도를 내리는 장치이다.
1931년에 아인슈타인은 윌슨산천문대를 방문하여 허블과 역사적인 대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인정함녀서, 자신이 도입했던 우주상수가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실수였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실수는 우주론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이 방문길에 아인슈타인은 부인과 동행하였는데, 천문대의 연구원들은 아인슈타인 부인에게 천문대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거대한 천체 망원경이 우주의 궁극적인 형태를 밝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제 남편은 편지봉투 뒷면에 수식을 끄적이면서 그 일을 해왔답니다.”
평범한 과학자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여 산더미같이 쌓인 실험데이터와 씨름을 벌이면서 세월을 보내기 일쑤지만, 가모브는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해 핵물리학과 우주론, 그리고 심지어는 DNA까지 연구하는 등 다방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가모브는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찬용 빵을 몰래 집으로 가져왔다가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훔쳐온 빵에 예수의 살점이 정말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미경까지 동원해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람의 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빵이었던 것이다. “내 기억에는 아마 그때부터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가모브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가모브는 “우주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주의 온도가 절대 온도 5K(영하 268도) 근처까지 식었음을 확인했다”고 선언하였다.
츠비키는 이런 사람들을 ‘구형 좀도둑’이라고 불렀다. 그 말인즉,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좀도둑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론이 해결한 문제들 중 하나는 우주의 평평성flatness과 관련되어 있다. 관측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곡률은 거의 0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과거의 천문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즉, 우주를 빠르게 팽창하는 풍선의 표면에 비유하면,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풍선의 표면(공간)이 거의 평탄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표면을 기어가는 개미(또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는 풍선의 작은 곡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서 있는 바닥이 평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주의 시공간은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어 지금은 거의 평탄해진 상태이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온갖 물질과 에너지를 연구해온 끝에,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힘이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네 종류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 힘은 태양과 행성들을 한 가족으로 맺어주고 있는 중력이다. 만일 중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다면, 별들은 당장 폭발하고 지구는 산산이 분해되며 우리 모두는 시속 수천km의 속도로 우주공간을 향해 내던져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도시의 밤거리를 밝히고 TV를 볼 수 있게 해주며 이동전화와 라디오, 레이저빔, 그리고 인터넷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이 있다.
세 번째 힘은 방사능 붕괴과정에서 작용하는 약력weak force인데, 이 힘은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을 한데 묶어놓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핵자들이 떨어져나가거나 붕괴되는 과정에만 관여한다.
마지막으로, 핵자들을 단단하게 묶어두는 핵력(nuclear force, 강력이라고도 함)이 있다. 핵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원자핵은 당장 분해되며, 그 결과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들도 근본적인 단계에서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은 가장 약한 힘인 중력보다 무려 1036(10의 36승)배나 강하다. 지구의 질량은 6조 곱하기 1조kg이나 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중력은 아주 미미한 전자기력으로 상쇄된다. 독자들은 대전된 머리빗에 종이가 들러붙는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지구와 종이 사이의 중력보다 머리빗과 종이 사이의 전자기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에서 창조된 우주론’은 기존의 논리로 증명될 수 없지만, 우주와 관련된 현실적인 질문에는 나름대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주는 왜 회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보자. 팽이나 허리케인에서 시작하여 행성과 은하, 심지어는 퀘이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물체들은 스스로 회전(자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는 회전운동을 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은하들의 스핀을 모두 더하면 0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주적인 규모에서 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중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중력은 전자기력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힘에 불과하지만,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전자기력을 특별히 문제 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정확하게 같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전하가 아예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우주는 전자기력이 아닌 중력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0.00001% 정도 차이가 난다면,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산산이 분해될 것이며, 강력한 전자기력에 의해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각 우주마다 각기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다중우주는 이론적으로는 큰 하자가 없지만 지금의 실험기술로는 그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없다. 다른 우주에 도달하려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화이트T.H. White의 소설 <과거와 미래의 왕Once and Future King>에 나오는 “금지되지 않은 것은 의무사항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호킹은 “한번 형성된 역사는 바뀔 수 없다”는 ‘역사보호가설’을 주장하면서 시간여행을 끝까지 반대했다.
미스너의 우주란, 침실과 같이 좁은 공간 안에 우주전체를 요약시켜놓은 이상적인 우주를 말한다. 예를 들어, 왼쪽 벽에 있는 모든 점들이 오른쪽 벽에 있는 점들과 물리적으로 동등하다고 가정해보자. 보통의 침실에서 왼쪽 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면 벽에 코를 찧고 주저앉겠지만, 위와 같이 가정한 침실에서는 왼쪽 벽을 뚫고 나가는 순간 오른쪽 벽을 통해 다시 실내로 들어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왼쪽 벽과 오른쪽 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에 있는 벽과 뒤쪽 벽, 그리고 바닥과 천장도 같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침실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벽을 뚫고 나가도 반대쪽 방향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침실이 바로 우주전체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왼쪽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명한 벽 너머에 이곳과 똑 같은 방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곳에는 당신과 똑 같은 사람이 똑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왼쪽 벽뿐만 아니라, 어떤 방향을 바라봐도 똑 같은 방을 볼 수 있다. 위, 아래, 앞, 뒤쪽방향으로 동일한 방들이 무한히 길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유별난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기발한 방법으로 우주를 여행한다. 웜홀이나 초광속비행, 차원입구 등 다소 고리타분한 방식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를 이용하여 은하들 사이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와 CD 등에 들어 있는 전자들은 규칙적으로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갑자기 나타나곤 한다. 만일 전자가 두 개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면 현대문명은 당장 와해될 것이다(자연에 이런 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도 당장 와해된다… 원자가 뉴턴의 법칙을 따른다면 다른 원자와 부딪칠 때마다 원자핵과 전자로 산산이 분해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자들이 굳게 결합하여 하나의 안정된 분자를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전자가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하나의 점이나 공이 아니라 원자핵의 주변에 구름처럼 퍼져 있으면서 다른 원자와의 결합을 유지시키고 있다. 분자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우주가 분해되지 않는 것은 전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세한 양자적 사건 하나로 인해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세계와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세계가 분리된다는 것이다.
양자적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대본을 던져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인형이 자신의 몸에 묶여 있는 줄을 끊어버리고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파동의 확률과 상식적인 존재 사이의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내세웠다. “파동함수가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 관측되면 단 하나의 값으로 붕괴된다.” 다시 말해서,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던 파동함수가 ‘관측’이라는 행위에 의해 단 하나의 값(관측결과)으로 단순화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나무는 서 있는 상태와 쓰러진 상태가 파동함수 속에 공존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에 단 하나의 상태(대부분은 서 있는 상태)로 결정된다. 이 논리에 의하면 관측행위는 전자의 상태를 결정한다. 과거의 물리학자들은 전자의 상태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것을 확인하는 행위가 관측이라고 생각했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관측이라는 행위 자체가 물체의 상태를 결정한다.
코펜하겐학파의 두 번째 가정은 “누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종교계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옛날부터 철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은 “인간의 미래와 운명은 예견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해왔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맥베스>에 등장하는 뱅코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읊는다.
만일 그대가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종자가 싹을 틔우고 어떤 종자가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
나에게 말해다오…….
(1막 3장)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쓴 것은 1606년이었다. 그로부터 60년 후, 또 한 명의 영국인 아이작 뉴턴은 이 유서 깊은 질문의 해답을 구했다고 호언장담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모든 미래가 원리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을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체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상식적인 관념을 ‘객관적 진실’이라고 부르면서, 진리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는 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다양한 힘에 의해 결정되어왔으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자연이 나의 길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헨리 포드Henry Ford는 이것을 ‘내면의 소리’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신령daemon’이라고 불렀다… 하찮은 곤충부터 거대한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 …
신학자들도 이 문제를 놓고 오랜 세월 골머리를 앓아왔다.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은 전능하고omnipotent,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omnipresent, 모르는 것이 없는omniscient 신을 숭배하면서 숙명론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천당행과 지옥행의 여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종교도 있다.
18세기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주교의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모든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봐주는 관측자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을 유아론(唯我論), 또는 관념론이라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숲속에서 홀로 쓰러지는 나무는 진정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이론은 평평성문제와 함께 지평선문제도 해결하였다. 이 문제는 “밤하늘의 어느 쪽을 바라봐도 별들이 거의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실험 삼아, 오늘 밤 밖으로 나가 하늘의 한 구역을 바라보라. 그리고 시선을 180도 돌려서 정반대쪽을 바라보라. 그러면 두 지역에서 별의 밀도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바라본 두 지역은 거리상으로 거의 수백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전쟁이 끝난 후 휠러에게 물리학을 배운 제자들 중에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천재가 있었다. 그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양자역학을 가장 간단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요약함으로써 이론물리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그는 이 업적으로 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고전적으로 생각해보면,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한 당신은 A점과 B점을 연결하는 직선, 즉 최단거리를 따라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파인만식 논리에 의하면 당신은 A와 B를 연결하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이 경로들 중에는 화성이나 목성, 심지어는 멀리 있는 별을 거쳐 돌아가는 경로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빅뱅이 일어나던 시간까지 거슬러 돌아가는 경로도 포함되어 있다. 그 경로가 아무리 터무니없고 황당하다 해도, 일단 가능하기만 하면 무조건 고려해야 한다. 파인만은 이렇게 찾아낸 모든 경로에 숫자를 하나씩 대응시킨 후 이 숫자를 계산하는 일련의 법칙을 개발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 숫자들을 모두 더하면 당신이 A에서 B로 이동할 양자역학적 확률이 정확하게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진정 놀랍고도 아름다운 계산법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가능한 경로에 할당된 숫자들을 일일이 더하면 무한대가 되지 않고 서로 상쇄되면서 아주 작은 값이 얻어진다. 이것이 바로 양자적 요동의 근원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과 부합되는 뉴턴역학의 경로는 상쇄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큰 값을 갖게 된다. 즉, 뉴턴의 물리학으로 얻어진 물체의 경로는 ‘유일하게 가능한 경로’가 아니라 ‘가장 확률이 큰 경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 우주는 무한히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우주에 해당된다. 다른 가능성들 중에는 공룡과 현대인이 함께 사는 우주나 지구의 코앞에 초신성이 존재하는 우주 등이 있지만 확률이 너무 낮아서 대세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말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신이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마다 당신의 몸은 퀘이사를 거쳐가는 길과 빅뱅을 거쳐가는 길까지 포함해서 모든 가능한 경로들에 대한 확률을 평가한 후 이들을 모두 더하고 있다. 여기에 파인만이 개발한 경로적분법을 적용하면,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구한 경로는 유일하게 가능한 경로가 아니라 무한히 많은 경로들 중 가장 확륭이 높은 경로임을 알 수 있다. 파인만은 거의 에술작품이라 할 만한 특유의 계산법을 개발하여, 이토록 이상한 접근법이 기존의 양자역학과 완전하게 동일한 결과를 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안드레이 린데는 이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 모두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므로, 이 우주가 관측자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 우주와 우리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만물의 이론에는 인간의 의식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영상이나 음향을 기록하는 장치는 관측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기록된 정보의 내용을 확인하려면 그것을 보거나 들어줄 관측자가 어차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는 우주가 있어야 하고 기록장치가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관측자가 없는 우주는 죽은 우주나 다름없다.
만일 다중우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몸은 다른 우주에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당신이 사나운 공룡과 생존경쟁을 벌이는 우주가 있고 나치가 세계를 점령한 우주도 있으며 외계인과 동업해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우주, 심지어는 당신이 아예 태어나지 않은 우주도 있다.
다중우주는 과연 존재할 것인가?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다중우주이론을 라디오방송에 비유하곤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주변공간은 먼 거리에 있는 방송국으로부터 송출된 수백 종의 전파로 가득 차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건, 또는 자동차를 운전 중이건 간에, 수백 종의 라디오 전파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라디오를 켜면 그들 중 단 하나의 전파만을 수신할 수 있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다른 전파들은 결어긋남상태에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위상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당신의 라디오는 한번에 단 하나의 방송만을 듣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의 계산능력은 18개월마다 두 배씩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자외선빔을 이용하여 실리콘칩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능력이 꾸준하게 향상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과학기술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혁명적으로 발전해왔지만, 이런 추세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현재 상용화되어 있는 최첨단의 펜티엄칩은 원자 20개에 불과한 얇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으로 15~20년이 지나면 이 두께는 원자 5개 정도까지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작은 영역에서 뉴턴의 고전역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컴퓨터의 회로에도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은 영역에서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전자가 절연체나 반도체의 내부에 있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가서 회로를 단란시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실리콘에 새기는 회로의 크기를 더 이상 줄일 수 없게 되면 실리콘시대는 막을 내리고 양자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때가 되면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폐광촌처럼 버려진 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회로소자가 원자규모로 작아지면 컴퓨터의 작동원리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현재 컴퓨터를 이용한 모든 계산은 0과 1만으로 이루어진 2진법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의 스핀은 위와 아래, 또는 그 사이에 있는 임의의 방향을 ‘동시에’ 가리킬 수 있으므로, 컴퓨터의 비트(0 또는 1)는 이른바 ‘큐비트qubit(0과 1사이에 있는 임의의 값)’로 대치되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훨씬 강력한 계산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순수수학은 논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한 편의 시(詩)이다”
수학자들은 자신이 가장 ‘무용한’ 과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특이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수학은 추상적이고 무용할수록 더욱 큰 빛을 발하는 희한한 학문이다.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의 정보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혹시 우주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우주적 CD의 한 비트bit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만일 우주를 디지털화해 0과 1의 조합으로 축약시킬 수 있다면, 전체 정보의 양은 얼마나 될까? 베켄슈타인의 계산에 의하면, 직경 1cm짜리 블랙홀은 약 1066(66제곱)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고 있으며, 우주전체의 정보는 무려 10100(100제곱)비트에 달한다(이론적으로 이 정도의 정보는 직경이 0.1광연인 구sphere안에 모두 담을 수 있다. 10100은 1 다음에 0이 100개나 붙어 있는 가공할 수로서, 흔히 ‘구글google’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실험결과에 의하면 양성자의 수명은 우주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는 이 기적과도 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우주의 모든 상수들이 지금과 같이 적절한 값으로 세팅될 확률은 폐품창고에 태풍이 불어닥쳐서 보잉747제트기가 자동으로 만들어질 확률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 나의 선생님은 이 모든 우연들이 신의 의지에 따라 디자인된 것이라고 믿었던 반면,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이 우주는 우리의 등장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물리적 상수들이 적절한 값을 갖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모종의 의지가 개입된 계획우주’를 연상케 한다.
지금도 세티앳홈SETI@home을 방문하면 디지털관측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관장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외계생명체들이 보낸 신호를 분석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중에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는 노래가 있지만, 사실 별들은 반짝이지 않는다(‘작은 별’도 사실 ‘희미한 별’로 바꿔야 한다).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별빛이 대기에 의해 ‘열적 교란thermal fluctuation’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챌린저호의 승무원들이 우주유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몸에 비추는 별빛은 전혀 반짝이지 않는다. 시인의 눈에는 반짝이는 밤하늘이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천문학자에게는 악몽, 그 자체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망원경을 동원한다 해도, 사방으로 퍼진 영상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의 수수께끼들 중 상당수를 일거에 규명해줄 가장 강력한 도구는 뭐니뭐니해도 대형 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ider(LHC)일 것이다.
LHC는 직경이 27km에 달하는 초대형 입자가속기로서,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들보다 덩치가 크다. 실제로 LHC는 내부 터널이 하도 길어서 행정적으로는 스위스에 속해 있지만 반대쪽 끝은 프랑스 국경을 한참 넘어서 있다. 여기에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컨소시엄을 조직하여 경비를 공동으로 분담하고 있다. 이들의 예정대로 2007년에 LHC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14조 전자볼트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그동안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이론들을 가차없이 실험대 위에 세울 것이다.
LHC는 진공상태의 거대한 원형터널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빔이 터널을 따라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면 그 안에 에너지가 주입되어 엄청난 양의 복사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때 튀겨나오는 입자들을 감지기로 잡아내면 새로운 입자의 생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열역학 제 1법칙은 물질과 에너지의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E=mc2를 통해 서로 오락가락할 수는 있지만 이들을 합한 양은 절대로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열역학 제 2법칙은 간단히 말해서 “엔트로피entropy(무질서도)의 총량은 항상 증가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세 가지 법칙 중 가장 신기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만물은 꾸준히 나이를 먹다가 결국 종말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숲에서 일어나는 화재와 기계에 스는 녹, 제국의 붕괴,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인간 등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종이를 태우기는 아주 쉽다. 그냥 마른 종이에 성냥이나 라이터 등을 켜서 갖다대면 된다. 이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에 해당된다. 그러나 타고난 재를 모아서 종이로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 3법칙은 어떤 냉장고도 절대온도 0K(영하 273도C)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냉장고의 성능을 이상적으로 개선하여 거의 0K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0K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입자의 에너지가 0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너지가 0이 되면 입자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지므로 입자의 위치와 속도(=0)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는데,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 위배된다].
정보를 폐기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체의 기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렇게 되면 모든 생명체들은 엄청난 기억에 짓눌려 과거만 회상하며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크라우스와 스타크만은 이렇게 반문했다.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면 영원의 시간은 감옥에 불과하다. 새로 습득한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과거의 기억은 순차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영원한 기억은 일종의 열반(涅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는 것일까?”
죽음은 ‘모든 정보가 단절된 상태’로 정의될 수 있다.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들은 물리학의 근본법칙을 깨닫는 순간부터 ‘우주의 궁극적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대로,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우주엘리베이터’가 발명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에 나노과학자들은 초강력 · 초경량의 탄소 나노튜브(가느다란 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론적인 계산결과이긴 하지만 이 탄소끈을 인공위성에 묶고 정지궤도(지상 3만 2,000km)에 올린 후 지구로 추락하지 않을 정도로 ‘휘둘러도’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선과 지구 사이를 탄소튜브로 연결한 후 콩나무를 타는 잭처럼 줄을 타고 올라가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우주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 과거의 우주과학자들은 이 정도로 강한 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주엘리베이터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초강력 탄소섬유가 개발된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 NASA는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기본적인 단계에서 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몇 년 후에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축약이 얼마나 효율적인 대책인지를 실감하기 위해, 인간의 두뇌를 잠시 떠올려보자. 우리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이것은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 존재하는 은하의 수와 비슷하다) 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는 초당 1,000조 바이트의 연산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 정도 기능을 갖추려면 차지하는 면적만 수 m2는 족히 될 것이며, 열을 식히기 위해 끊임없이 찬물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어도 ‘생각하는 행위’ 만으로는 거의 땀을 흘리지 않는다.
두뇌의 정보처리방식은 컴퓨터와 전혀 다르다… 두뇌의 신경을 타고 흐르는 정보는 근본적으로 화학적 신호이기 때문에 연산속도가 컴퓨터처럼 빠르진 않지만 다양한 연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서, 결과적으로 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가? 형이상학의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것은 이 세계의 존재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과 동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위그너는 위대한 천문학자 제임스 진스James Jeans의 저서에 나오는 다음의 글귀를 종종 인용하곤 했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초-거시적 세계나 원자의 내부와 같은 초-미시세계로 들어가면 기계론적인 설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런 극단적인 영역에서는 기계적 과정보다 정신적인 과정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우주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의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그의 저서 <태초의 3분The First Three Minutes>을 통해 ‘삶의 의미’라는 문제를 색다른 형태로 부각시켰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주는 더욱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위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우리에게 비극적인 우아함을 안겨준다……” 와인버그는 자신이 쓴 모든 글들 중에서 이 문장이 가장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하였다. 훗날, 그는 다음과 같은 글로 또 한 번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종교가 있건 없건 간에, 좋은 사람은 선을 행하고 나쁜 사람은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 대부분의 동기는 종교가 부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론을 연구하면서 “신은 왜 우주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는가?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가?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모습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긴 것인가?” 라는 질문을 수시로 떠올렸다.
(단테의 <신곡>중 <지옥편inferno>을 보면 지옥의 입구 근처에 제1환계First Circle라는 세계가 있는데, 선의를 갖고 있으면서 예수의 뜻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단테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위대한 철학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물리학자 윌첵은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도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믿음이란 멍청한 바보도 믿지 않을 황당한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마크 트웨인도 제1환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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