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물리는 여자

 

                              노영임

 

 

뜨건 국밥 후후 불며 젖 물리고 앉은 여자

어린 건 한껏 배불러 빨다가 조몰락대다

꽉 쥐고 해살거리며 또글또글 웃는다

 

한길에는 늦게 깨어난 게으른 햇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살짝 휜 S라인 여자들 발꿈치를 좇고 있다.

 

공갈빵처럼 부푼 가슴 아슬아슬한 실루엣

필라멘트 깜빡깜빡 전류를 방출하는

뾰족한 고욤 두 개가 손끝에만 대도 터질 듯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늪에 빠지듯 지독한 허기 몰린다

 

순환소수처럼 잇고 이어 사람에 사람을 낳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따뜻한 양수의 기억

넉넉히 젖 물려주는 그런 여자가 그립다.

 

 

 

*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여성 나상(裸像).

  생식·출산(풍요다산)을 상징하는 주술적·원시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소개하는 것은 시조다. 시조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던 나로서는 시조의 이미지들이 현대적이어서 재미있었다. 음… 아마도 요즘은 시조도 운율이나 어법이 요즘에 맞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가 보다. 아마 여러분들도 시조에 ‘순환소수’나 ‘발렌도르프 비너스’나 ‘S라인’같은 말들이 쓰이는 게 생소할 것 같다. 하긴 춘향이가 왕성하게 연애하던 시대에는 춘향이의 행태가 제법 현대여성에 가까운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조를 보고 있으면 기본적인 가치관은 여전히 과거의 것과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순 요약하자면, 여자는 넉넉히 젖 물려 주고, 아기 잘 낳고, 빌렌도르프 비너스 같은 여자가 참 여자라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나처럼, 사람들이 아기를 더 이상 낳지 말고, 차라리 아기 낳아 키울 에너지비용으로 있는 아기들(고아, 소년소녀가장, 빈민아동 등)이라도 잘 돌보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는 썩 와 닿지 않는 가치관이다.

 

  그야 물론, 대화의 50% 이상이 연예인이나 작품성 없는 드라마로 채워지는 젊은 여자들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에 황사가 뿌옇게 불어오는 듯 답답해지지만,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이상적인 여성상이 이 시조와 같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게다가 시인들의 모임에서도 술에 취한 중년남자 시인들이 으레, 한 둘 있는 예쁜 여자 시인들에게로 몰리는 걸 보기도 한다.

 

  이 시조는 2007년 신춘문예 당선작 중 한 편으로, 아주 잘 쓰여졌다고 생각하고 감동적인 부분도 많다.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이라는 표현에서는 가슴이 뜨끔했다. 하지만 나처럼 결혼 생각이 없는 만 29세의 청년에게는 ‘넉넉히 젖 물려주는’여자들로 가득한 세상은 끔찍하다. 그보다는 ‘휘청 가는 허리’, ‘공갈빵처럼 부푼 가슴’의 여자들이 설레고 좋다.

 

 물론 이런 성향이 다분히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은 높다. 내가 일하고 있는 '광고'업계가 주원인일 수도 있고, 연예게나 기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런 걸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20년 간 자라난 여성에게 '왜 그렇게 사시오?'하고 따지기에는 미안한 감이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우리는 주위의 바램 속에서 키워지기 마련이다. 말을 빨리 배웠으면, 다른 애들보다 튼튼하게 자랐으면 등. 이 시에서 이상적인 여성은 넉넉히 젖을 물려줄 줄 아는 여인인데, 그렇다면 당연이 이상적인 아기는 젖을 쪽쪽 빨아먹고 투실투실 커가는 아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이런 사람이 되어라'는 명령코드는 입력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어른이 된 여인이 아기를 위해 넉넉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되는 현상이나, 지금의 '휜 S라인'의 여자들이나 나로서는 둘 다 바람직하다. 다만 어느 입장이건 지금의 자신이 행복하고 또 아름답고 또 나를 만나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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