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행복해지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욕심
미련
이라고 하겠다.
미련
은 후회와는 달라서,
후회는 하지 않으려면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하지 않는 것이 정당해보이지만
미련은 다만 나쁘기보다는 소중한 경우가 많고
애틋한 기억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아서
마냥
좋지 않다
라고 하기도 적절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통증의 가장 마지막 불씨
새벽녁 꺼져가는 서늘한 모닥불에 맨 발바닥을 가져다 대었을 때
부드러운 잿속에서 발바닥을 지지는 꼭 한 덩이의 불씨
인 경우가 많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15만원어치 주문했다.
북앤드에 주루룩 세워 놓고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문득 숄을 두르고 싶어졌다.
숄을 내가 어디다 두었더라?
춘천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겨울철 도서관에서 숄을 두르고 공부를 하는 여학생들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숄은 점퍼가 줄 수 없는 아늑함,
실외, 낯선 곳이라도 내 집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는
최면성
을 지니고 있어 보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 나 숄 하나만 사서 보내줘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결코, 남자가 무슨 숄이니 라고 말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보다
184cm에 72~74kg에 어깨가 무척 넓은 건장한
아들이 두를 만한 숄을 찾기 위해 남대문을
뒤지셨다.
남대문은
성의 경계였고
성은 임금이 계신 곳을 뜻했는데
남대문은 군사지역이며 문화재이고 번듯하며 돌인데
뒤지셨다 어머니는.
그리고 숄을 보내주셨다.
어머니를 잊듯이 숄을 잃어버렸는데
어쩌면 누군가를 그냥 줘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에게 누군가를 주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내 엄마를 다른 무엇에게 주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새 영화 <패러노이드 파크>가 보고 싶어서
잡지에서 오린 기사에 별표를 그려서 책상 벽에 붙여 놓았다.
내가 봤을 때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나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조잡하게,
어느 나라, 몇 년도 출생, 무엇을 하고 누구를 낳은 누구
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구스! 우리 엄마를 아니?
라고 물으면
그야 물론!
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엄마의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구스 반 산트가 나의 엄마일지도 모른다.
또
또...
이런다.
아! 맞다. 그러니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언제나
미련
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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