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부족한 계절

 

 

 

 

서먹하고 둥근 사무실에서

해가 홀로 야근을 하는 계절

 

잠이 몇 번의 급정거를 하고

오전 6시 15분에 나를 하차시켰다

 

잠의 기어를 풀고, 시동을 끄고

단단히 문을 잠근다

 

무면허 수면자(睡眠子)들이

짧은 밤의 러시아워를 뚫고

분주히 하늘을 날아다닌다

코끝에서 부딪히는 작은 잠들

 

스물 다섯 살 무렵에 만난 내 옛사랑은

능숙하게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벼랑 끝에서 그녀의 집 앞까지

질투와 걱정이 비처럼 내리는 도로

뻔히 보이는 차선분리대를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나 고장 나고 싶었다

 

한참을 헛돌 때

나를 견인해 숲에 데려다 놓았던 건

사슴처럼 새까만 잠이었다

 

서른 무렵부터 가끔

옛사랑과 달리던 길을 찾아가 홀로

못보고 지나친 이정표를 찾아보기도 한다

 

먼지가 가만히 누워있는

꿈 속 도로를 달리다

단속을 피하는 뱀파이어처럼

6시 15분에 주차되는 것이다

 

출근 전철에 오른다

꾸벅이는 사람들

잠 속에 차를 버리고 회사로 뛰는 사람들

길고 넓은 잠의 도로가 눈동자 속으로

깊숙이 터널을 파고든다

 

잠이 말없이 운전을 하다가

6시 15분에 나를 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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