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고 선비는 멈춘다
사랑은 늘 ‘간다’
야근하는 여자의 발가락 틈새에서도
교보생명 사거리 동냥그릇 옆으로도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도 사랑은 가고
환율이나 취업난에도 상관없이
막히는 곳도, 교통 방송도 없이
사랑은 잘도 빠져
나 간다
는 말도 없이
사랑은 주로 앞서서 가니까
평생 내 앞으로만 가는 것 같아
여름 위에 서면 가을로 가고
가을 목화솜 피면, 겨울눈 내리고
추위는 더 추워지고
쫓아가는 길은 더 가늘어지고
사랑을 찾아 우주까지 날아간
우주비행선비(宇宙飛行士)는
버선발로 캄캄한 우주를 뛰어다닌다
다들 가고 지구에는 없어
우주까지 뒤져야 하는 사랑은
찾아도 가고 못 찾아도 가는데
지구보다도 빠르게 우주를 날아
나이도 천천히 먹는
오래된 우주비행선비는
하얀 두루마기에 떠난 지
오래된 냄새를 키운다
아득한 우주, 바닥을 치며
기억처럼 날아다닌다
냄새 한 번 맡고 발길질 몇 번하고
선비의 눈동자는 물 없는 별들을 닮아간다
12만평 농지를 일구고
학식이 바다와 같던 선비지만
아무리 가도 늘 가만히 멈춰 서있다
우주는 너무나 넓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