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오징어, 그리고 삶은 당근처럼

 

 

편의점 천냥 김밥을 사와서

빈방에 가둬놓는다.

외출하는 척 문을 쾅, 닫고

가만히 참기름처럼 문에 기댄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빅뱅

방에서 홀로 터져나가는 김밥을 떠올리니

꾸역꾸역 슬픔이 씹힌다

마음을 슬픔의 먹물로 채우면

오징어 소리를 낼 수 있다던데

열 개의 팔다리는

밤거리와 잘 마른 운동화를 그리워하리

그리움의 끝을 잘라

입구를 막고 삼키리

꽂을 데 없는 USB처럼 지하철은 달리고

나는 언제 지하철에 탔는지 당혹스럽다

그 순간 온갖 별자리에

시금치 냄새가 퍼지고

여자는 또 이런 저런 당근처럼 보이고

고장 난 자판기처럼 보이고

열 개의 팔다리를 뻗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진다

편의점 김밥 조차 외로우면 살이 터지듯이

일회용 사랑인들 밤하늘 어딘가

제 자리가 있으리라

어느 당근이거나 내 손을 잡고

하룻밤 오징어 김밥을 만들어다오

나와 함께 우주 속 USB포트에 접속하여

사랑의 신호를 저장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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