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2007, 가을

 

 

 

 

시적 몽상과 놀이 중(中), 허형만

 

저는 한때 꿈속에서도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시에 한창 미쳤을 때, 그러니까 60년대 대학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의 시간에는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는 마당 중(中), 권현형

 

교미 중이구나, 고민 중이구나

(이튿날 원서헌을 출발하기 직전 나는 박태기나무 아래 풀밭에서 이동재 시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풀 위에서 봤어요? 내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동재 시인이 애련리 하늘의 말간 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태기나무 속에 숨어있던 부처의 고민이 나와 많이 다르진 않으리라 믿는다.)

집시의 피가 아이의 몸에 흐르는 것일까. 아이가 그네에서 내려오자 허형만 선생님께서 아가! 아가! 참 잘했다. 다정하게 칭찬하신다. 립싱크하신다. 분명 느티나무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모과 썩다

                    정진규

 

  올해는 모과가 빨리 썩었다 채 한 달도 못갔다 가장 모과다운 걸, 가장 못생긴 걸 고르고 골라 올해도 제기 접시에 올렸는데 천신하였는데 그 꼴이 되었다 확인한 바로는 농약을 하나도 뿌리지 않은 모과였기 때문이라는 판명이 났다 썩는 것이 저리 즐거울까 모과는 신이 나 있는 눈치였다 속도가 빨랐다 나도 그렇게 판명될 수 있을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을까 글렀다 일생(一生) 내가 먹은 약만해도 세 가마니는 될 것이다 순수한 것이라야 빨리 썩는다 나는 아예 글렀다 다만 너와 나의 사랑이 그토록 일찍 끝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을까 첫 사랑은 늘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연고다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절정에서는 금방인 저 쪽이 화안하다 비알 내리막은 속도가 빠르다 너와의 사랑이 한창이었던 그때 늘 네게서는 온몸으로 삭힌 술내가 났다 싱시한 저승내가 났다 저승내는 시고 달다 그런 연고다

 

 

 

 

 

입동

 

               김영근

 

플라타너스 가지 끝에 고양이 몇 가르릉거린다

바람이 불면

갈색이거나 검은 몸을 가지에 바싹 붙이며

더 앙칼지게 가르릉거린다

몰려오는 어둠이 죄다 쥐떼로 보였는지

몸을 날리려 하지만

뛰어내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밤 내내 가르릉거린다

어미는 어딜 갔을까

밤 깊어 바람 차가울수록

울음은 송곳니처럼 자라나

내 꿈을 찢고 들어온다

 

나는 내 시체를 보고 울고 있었다

죽도록 해도 이룬 일 하나 없어

울음은 차츰차츰 통곡으로 변하고

그 소리에 놀라 문득 깨니

올라온 기억이 없는 이 높은 가지 끝에서

어떻게 내려갈지 몰라 죽은 어미를 찾으며

나도 한밤 내 가르릉거리고 있다

 

 

 

 

 

 

기막힌 밤

 

                   김정원

 

해는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는,

야행성들 짝짓기 좋은 시절이었다

 

그는 산밭에서

한 줄기에 졸래졸래 따라 나오는

쇠불알 같은 고구마 쑥쑥 캐내며 각시에게 말했다

오늘밤 내가 꼬끼오 하고 살짝 방문 열고 나가면

자네가 꼬꼬댁 하며 둘러보고 뒤따라 나오게나

각시는 말이 없었지만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그는 장가들자마자 물려받은 재산 없이 분가해

겨우 자기 손으로 지은 초가삼간에

검은 머리 희끗희끗 세도록 살고 있었다

이팝나무 가지에 만발한 꽃들처럼

온 식구가 다닥다닥 엉겨 붙어 잠자는

그 하나뿐인 보금자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각시에게 다가가기 쉬워 육남매나 두었는데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다보니

더 이상 각시 곁에 눕기는커녕,

손잡는 일조차도 큰애 눈치코치 살펴야 했다

 

마침내 농가에 밤이 찾아왔다

새끼들이 잠들 시간, 느닷없는 그 시간에

수탉이 먼저 꼬끼오 울며 닭장 문 열고 미끄러지듯 새나가자

암탉이 곧장 꼬꼬댁 목 길게 빼고 울며 둘러보고는

한참 뒤 마음 놓고 꼬끼오 발자국 밟아 나섰다

그때였다, 삐약삐약,

병아리들이 죄다 일어나 마당까지 졸래졸래 뒤따라 나왔다

 

마당 여기저기서 귀뚜라미들이

귀또르르 귀또르르 사랑노래 연신 굴려대는

기막힌 밤이었다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여백과 현대시 중(中), 이상오(문학평론가)

 

예술 창작에 있어서의 이러한 존재론적 사유는 청대(靑代)의 오교가 있는 것을 그대로만 그리면 그것으로 다하고 말지만, 비어 있는 것을 그려내면 그 뜻은 무궁해진다고 하는 표현론적인 사유로 확장된다.

 

 

 

 

고향의 풍경 중(中), 장인수

 

요새 마트나 백화점에 가 보면 생산 농가 및 출산지, 유통 경로까지 표시된 채소나 과일을 볼수 있다. 이른바 이력추진제라는 것이다. 이력서가 가장 돋보이는 곳이 바로 농수산물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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