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제임스 러브록, 갈라파고스, 2004
근래에 이르러 몇몇 물리학자들은 생물-생명(life)-을 정의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버널(Bernal), 슈뢰딩거(Schroedinger), 위그너(Wigner) 등은 모두 비슷한 결론을 내렸는데, 그것은 생물이란 개방적 또는 연속성의 시스템으로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취한 자유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하고, 더불어 이의 분해산물을 체외로 배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internal entropy)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는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 이런 정의를 다시 정리한 또 다른 한 해석은, 생물이란 충분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포착될 수 있는, 그런 과정의 한 가지라는 것이다. 생물은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자신의 형태를 구성하고 변형시키려고 하는 경향을 갖은 존재라고 그 특징을 기술할 수 있으리라.
다른 어느 행성에서도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유독 지구만이 갖는 독특한 대기 성분의 비밀은, 그것이 다름 아닌 지구의 생물들에 의해 하루하루 착실하게 만들어지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엔트로피의 분명한 감소 – 또는 화학자들이 보통 말하듯 대기 가스들의 영속적 비평형(disequilibrium) 상태 – 는 생물의 활동을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우주탐사의 가장 큰 부산물은 그런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아니다. 그것의 진정한 성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외계로부터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으로써 외계에서 청록색의 아름다운 구체를 주시하면서 우리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질문과 해답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학적인 정의로 에온(aeon)은 10억 년의 세월을 의미한다. 화석 기록과 방사능 연대 측정에 의해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구가 독립적인 천체로 존재해온 기간이 약 45억 년에 이른다. 즉 4.5에온의 시간인 셈이다. 이제까지 지구에서 발견된 최초 생물의 흔적은 3에온도 더 오래 전에 형성된 퇴적암에서이다.
지구와 화성 그리고 금성에서는 수소를 무한정 붙잡아둘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중력이나 저온 현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생물학적 작용이 없었다면 결국 수소를 모두 소실하게 되었을 것이다. 수소는 모든 원자들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원소이다.
만약 대기 중에 포함된 산소의 농도가 현재보다 4%만 더 증가한다면 세계의 도처에서 대화재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만약 산소의 농도가 25%까지 이르면 심지어 습기를 담뿍 품고 있는 숲이라고 해도 일단 불이 붙으면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번갯불 등에 의하여 삼림에 화재가 발생하면 그 불은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킬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미소한 종류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종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이 갖는 매우 특별한 속성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시행착오라는 사이버네틱 과정을 통하여 이에 합당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가동시키고, 또 유지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이버네틱 시스템은 순환논리(circular logic) 회로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인과관계의 전통적인 선형논리(linear logic)만을 다뤄왔기 때문에 순환논리에 대해서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마치 다른 세계의 것처럼 소원하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달성의 과정을 시행착오라 부른다.
그동안 원시 대기의 조성과 태양의 복사에너지의 양에는 놀라울 정도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구는 생물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춥거나 더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이아는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서 그렇게 능동적으로 주위 환경을 조절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가이아의 어떤 부분이 온도조절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필경 범지구적 온도 조절을 위한 메커니즘이 어느 단순한 한 가지 시스템에 의해 단독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몸의 체온은 비록 건강이 좋을 때라 해도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37.5도가 정상 체온이라는 말은 사실 허구에 가깝다. 체온은 순간순간 필요에 따라서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달리기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우리 몸의 온도는 37.5도에서 몇 도 더 높아지게 되는데, 이때의 온도는 고열이 날 때보다 더 높은 것이 보통이다. 이른 아침이나 또는 굶주릴 때 우리 몸의 온도는 정상 체온보다 훨씬 더 낮다. 더욱이 비록 정상 상태에 있을 때라 해도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이 37.5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 체온을 나타내는 부분은 우리 몸의 중요한 기관들이 들어 있는 머리와 몸통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 몸의 피부와 사지는 넓은 범위의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심지어 빙점 이하의 온도에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떨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그 구직자의 인간됨이 어떠하고 그의 잠재 능력이 어떠한지에 대해 직접 알아보려 하기보다 차라리 서류에 나타난 과거 기록으로 그를 쉽게 평가해버린다. 그런데 최근까지 우리 대부분은 행성 지구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주의력은 전적으로 지구의 과거사에 집중돼왔다. 무수히 많은 서적들과 논문들이 태고 시대의 바위와 원시 해양의 생물들을 취급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이런 과거에 대한 연구가 지구의 속성과잠재력에 대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마치 구직자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들의 증조 할머니의 뼈가 통뼈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달 표면에서 찍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의 사진을 보면서 불현듯 우리가 이 미려한 행성 지구의 시민임을 깨닫게 되었다. 설령 가까이서 바라볼 때에는 추악하고 비참한 지구라 할지라도 멀리서 바라본 지구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인류는 스스로를 자연계로부터 이탈시켜 이제는 마치 자연계의 한 부분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또 인류 문명의 산물은 아예 ‘자연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들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화학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 자체가 바로 생물계의 일원이며, 그것들은 바로 우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서 클라크(Arthur Clarke: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공상과학 소설가-옮긴이)는 한때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이 행성을 지구(Earth)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부적절한가? 이곳은 명백히 대양(ocean)으로 불려야만 한다.”
대양은 깊은 청색 바다가 널리 퍼져 있는 바로 그 상태를 일컫는다. 대양은 지구를 방문하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대양은 지구라는 거대한 증기기관의 한 부분으로 이 기관이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들여 공기와 물의 운동을 통하여 에너지를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분산시키는 데에 막중한 역할을 담당한다. 총체적으로 대양은 거대한 ‘기체 저장고’라고 할 수 있어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조성을 통제하고 해양생물들 – 지구상의 모든 생물군의 약 반에 해당하는 – 에게는 안정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등으로 생물권에 기여한다.
근래에 패런 매킨타이어(Ferren Maclntyre)는 대륙으로부터의 유출만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염분의 유일한 근원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바다 밑바닥 어느 곳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맷돌이 영원히 돌고 있어서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는 옛날 노르웨이의 동화를 예로 들었다. 어쩌면 그 동화가 그저 엉뚱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대양의 밑바닥에는 갈라진 틈이 있고, 그 속으로부터 용암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해저를 덮어 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용은 대륙을 서서히 이동시킬 뿐 아니라 역시 바다의 염분 농도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바닷물은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살아 있는 생물들과 죽은 생물체들을 포함하고, 또 물 속에 녹아 있거나 떠 있는 형태로 갖가지 무기물들을 담뿍 함유하고 있는 아주 복잡한 수용액이다.
우리가 이런 지식을 염두에 둔다면 처음에 가졌던 의문, 즉 ‘바닷물은 왜 짤까?’라는 물음에 대해 갑자기 흥미를 잃게 된다. 육지로부터의 염분 유출과 해저 확장에 의해 현재 수준의 염분 농도가 이룩되었다고 쉽게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왜 바닷물은 지금보다 더 짜게 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보다 중요한 질문이 따르게 된다. 그러면 가이아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 독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으리라. ‘처음 생물이 지구에 출현한 이래 해양의 염도는 생물들에 의해서 통제되었을 것이다.’
노인들은 종종 과거에는 모든 것이 현재보다 더 나았다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이런 과거에 대한 애착은 우리의 뿌리 깊은 생각이어서 어쩌면 우리 자신들조차도 나이가 들면 똑 같은 말을 읊조리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자연스레 인류의 조상들은 가이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저면 인류는 진실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이 말은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며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의미심장한 표현일 수도 있으리라.
더욱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상에는 오직 한 종류의 오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르네 뒤보(Rene Dubos)는 인간의 존재를 지구 위의 모든 생물들을 돌보는 집사의 개념으로강하게 표현했다. 그는 인간은 지구라는 커다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며 정원의 꽃들과 정원사는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매우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임이 분명하다. 뒤보와는 반대로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은 인간의 존재를 그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할 뿐 아니라 세계의 나머지 부분들도 파멸로 이끄는 비극의 연출자로 간주했다. 그는 인류가 이런 파멸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대 과학기술, 특히 원자력 관련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생물이 가이아 가설에 연결될 때에는 특별한 관심이 미생물들에게 집중될 따름이었는데, 미생물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하등생물로 비춰져서 생물의 범주에 집어넣지 않기도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인간 종족은 가이아의 발달사에 있어 물론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인류는 가이아의 역사에서 가장 뒤늦게 등장했기 때문에 인간의 역할을 논의하면서 가이아의 존재를 살펴보기란 조금 부적절하다.
하딘이 가졌던 생명관의 핵심은 현대 생태학 속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데, 열역학의 세 법칙(three laws of thermodynamics)을 쉽게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We can’t win.)
우리는 분명히 지게 된다. (We are sure to lose.)
우리는 게임에서 손을 씻을 수 없다. (We can’t get out of the game.)
하딘의 견해에 따른다면 이 세 가지 법칙은 단순히 단어 의미의 타락 정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칙에는 비극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비극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폐쇄 시스템(closed system)에서는 엔트로피(entropy)가 항상 증가한다고 단언한다. 모든 생물은 폐쇄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결국은 죽고 만다는 사실이 바로 이 법칙이 시사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을 포함해서 모든 생물은 끊임엇이 죽음을 맞지만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시하고 있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이 시사하는 사형 선고는 단지 개체성(identity) 그 자체에, 그리고 폐쇄 시스템 그 자체에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사망의 운명(mortality)은 생물체가 그 개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대가이다.”
열역학 제2법칙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 법칙은 우리가 게임에서 결코 이길 수 없으며,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법칙 역시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동안은 거의 무엇이든지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갖는 본래적 속성의 가운데 하나는 적당함과 균형잡힘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는 미적 감각인데, 이런 속성을 본능으로 지닌다는 것은 필경 우리 자신의 생존에 유익할 것이다.
고래는 대양이라는 3차원의 공간에서 이동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3차원적으로 축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자연히 많은 기억저장 창고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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