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시공사, 2007
이러한 이유로 그 가엾은 시골 귀족은 판단력을 잃어버렸고, 심지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로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부활한다 할지라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들을 이해하고 의미를 되새기느라 밤을 지새곤 했다.
“새끼 북어라도 많기만 하다면야 다 합치면 북어 한 마리쯤이야 되겠지요. 어차피 8레알을 잔돈으로 받는 거나 화폐로 받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아이구, 신부님. 그것들도 같이 불태워버려야 해요. 아저씨가 기사병에서 다 나은 다음에 또 그 책들을 읽고 양치기가 되어서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면서 산과 들을 돌아다닐지도 몰라요. 더구나 시인이 되면 어떻게 해요? 그 병은 한번 걸리면 고칠 수도 없다는데.”
‘아름답기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비록 못생겼더라도 나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요.
살모사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을 가졌다는 그 천성으로 인해 비난받을 수 없는 것처럼 저 역시 아름다움을 타고났으니 아름답다는 이유로 지탄받을 수는 없지요. 정숙한 여인에게 아름다움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불꽃, 혹은 예리한 칼날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데이지도 베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산초 네가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우연히 두 손에 쥐고 있던 도구들 때문에 받은 상처들은 모욕이 아니란 말이다.
“산초, 이 모든 것에서 네가 깨우쳐야 할 점은 시간이 지우지 못할 기억이란 없는 것이며, 또한 죽음이 희석시키지 못할 고통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을 사라지게 해주는 시간과 불행의 종지부를 찍어주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 그녀의 입에서는 약간 쉰 샐러드 같은 입냄새가 풍겼지만 돈키호테에게는 부드럽고 향긋한 향내로 느껴졌다.
“그래서가 아니고요, 제가 가장 꺼리는 일이 무슨 일이든지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묻어두었다가 속에서 썩어문드러지면 어쩝니까?”
“나는 참 운도 없구나. 검을 휘두르는 팔만 아니라면 팔 하나가 망가지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네게도 말했듯이 산초야, 어금니 없는 입은 돌 없는 맷돌과 같고, 이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하는 법이다…”
“저는 항복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당신에게 청하건대 기독교 신자라면 나를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석사이며 신참 수도사랍니다.”
“그러면 교회에 속하는 당신을 여기로 보낸 작자는 도대체 누군가?”
“누구냐고요? 그거야 제 불행이죠.”
“…. 살아서든 죽어서든 곧 돌아올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손가락의 반지처럼 지금 주인님이 처한 상황에 딱 맞는 말입니다.
“산초야, 속담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것 같구나. 속담이라는 것은 모든 학문의 어머니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산초야, 잘 알아둬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혈통이 있단다. 한 가지는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로 세월을 따라 내려오면서 점차 몰락하여 마치 거꾸로 뒤집어놓은 피라미드처럼 그 끝이 뾰족해지는 이들이고, 또 한 가지는 뿌리는 하층 계급 출신이나 점차 지위가 올라가면서 결국 대공에 이르는 이들이다.
“ ‘고통 속에서 노래 부른다’는 것은 고문 중에 자백한 걸 의미하죠. 이 죄인에게 고문을 가했더니 자기가 가축을 훔쳤다고 자백하더군요…속칭 그들은 ‘그래요’든 ‘아니오’든 글자수가 똑 같은 데다 사느냐 죽느냐는 증인이나 증거품이 아니라 자신의 혀에 달려 있기에 다행한 일이라고들 말하는데, 제 생각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대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대를 천사로 생각했고, 그대의 행적으로 인해 그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마음에 전쟁을 불러일으킨 그대여, …
“제가 미리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가급적 짧게 끝내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불행했던 순간을 회상한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을 하나 더 덧붙이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요….”
“바로 그거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일이 숭고하다는 것이지. 기사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미쳤다면 뭐 그리 감동적이겠느냐? 중요한 것은 아무 이유 없이도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둘시네아 공주님이 아무 일 없을 때도 이 정도니 위급한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어떨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처음 도착하는 마을에 가거든 초등학교 선생이나 교회의 성물지기라도 찾아가 이것을 종이에 정자로 옮겨달라고 해라. 하지만 법원 서기에게는 부탁하지 마라. 어찌나 글자를 흘려쓰는지 악마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주인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그리고 전 바보걸랑요. 아이고, 내가 왜 내 입으로 바보라고 했는지 모르겠네. 교수형으로 처형된 사람의 집에서는 밧줄을 얘기하는 법이 아닌데…”
사랑은 부드러운 가죽끈이 아닌
채찍으로 목덜미에 채찍질을 가하며
고통을 안겨주니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운명, 또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오, 내 휴식의 적인 기억이여!
루신다는 저의 여자이자 제 아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아내가 되고자 했으니, 나 역시 행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고자 함입니다… 이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차고 넘치는 감상이 나에게는 없었음을 후세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예로 남을 것입니다.
불행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법입니다만,…
그녀가 부정을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사람이 없다면 그녀가 정숙한 여자라는 게 뭐 그리 감사할 일이겠는가?
원주민들이 이야기하기를, 담비는 새하얀 털을 가진 작은 동물인데 사냥꾼들이 이들을 잡으려고 할 때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네. 담비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을 알아두고 그곳을 진흙으로 가로막은 뒤에 그곳으로 향하도록 몰아낸다네. 그러면 담비는 진흙이 있는 곳까지 와서, 자신의 하얀 털을 잃거나 더럽히지 않으려고 멈춰서서는 붙잡힐 때까지 가만히 있다더군.
훌륭한 여자는 반짝이는 맑은 유리 거울 같지만, 그것에 닿는 어떠한 입김에도 흐려지기 마련이네.
여자는 유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시험하면 안 된다.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모두 깨지고 말 테니.
어느 시인이 불가능한 것을 찾는 사람은 가능한 것조차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알라고 했네.
‘빨리 주면 두 배로 주는 것이다’ 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얻는 데 기회라는 것보다 더 좋은 사절은 없기 때문이에요.
“충실하고 지조 있으며 자비로운 하늘처럼 아름다운 나의 아내여, 당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고자 한다면, 운명이 당신을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도록 했던 때에 그대를 안았고, 지금 이 순간 그대를 안은 이 두 팔 외에 더 안전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오.”
* 어느날 도둑이 어느 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훔칠만한 것이 없자 하는 수 없이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다. 막 집을 나서는 도둑에게 그 집 안주인이 ‘들고 나가는게 뭐냐’고 물었다. 도둑은 ‘달걀프라이를 만들 때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우리 스페인에는 내 생각과 맞는 절실한 진실이 담긴 속담이 있다. ‘교회, 바다, 아니면 왕실’이라는 말인데,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권력과 부를 얻고자 하려거든 성직자가 되거나, 상술을 발휘하여 해상 무역을 하거나, 왕궁에 들어가서 국왕을 섬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요. 그는 영지를 갖고 계신 분이시고, 제 영혼에도 확실히 영지를 갖고 계신 분이란 말이에요. 그가 버리려고 하지 않는 한 영원히 그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지요.”
작품해설.
… 그후 작가는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을 거닐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아랍인 역사학자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아랍어로 쓴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이야기>를 주워서 이를 스페인어로 번역하게 한 후, 이것을 소재로 하여 돈키호테의 모험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고 밝힌다. 이 같은 기술이 사실이라면 <돈키호테>의 작가는 세르반테스가 아니라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이다. 세르반테스는 단지 번역된 이야기를 이용하여 소설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작가의 실종’은 당시 함스부르크 절대왕조와 종교재판소의 감시 하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파리 목숨처럼 희생되었기에 세르반테스가 살아남기 위한 장치를 확실하게 만든 것이다.
<돈키호테>에는 총 659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607명이 남자이고 52명이 여자이다. 그리고 그중 150명의 남자와 50명의 여자는 실제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세르반테스의 문학에는 사회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이제 세르반테스 시대의 사회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류층들만이 아니라 하류계급의 건달, 매춘부, 깡패, 이교도 등의 세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하류계층의 인간들도 우리의 이웃이며, 이 세계를 꾸려가는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는 현대 소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2008년은 <돈키호테>가 발간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돈키호테>가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등의 작품을 제치고 세계 유명 작가 100여 명이 세계 제 1의 소설로 선정한 것은 세르반테스의 근대적 사상과 파격적인 글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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