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애니 체니, 알마, 2007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일지니라
마태복음 24장 28절
인간은 시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작은 영혼이다.
에픽테토스Epictetus
복벽경은 의료 기구를 다루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수술이다. 만약 외과의가 메스와 환자 신장과의 거리를 조금만 잘못 가늠해도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컨퍼런스 에 참석한 외과의들은 의과대학에서 이런 기술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IMET 사에 저마다 2,395달러를 지불하고 기술 지도와 최신 의료 장비, 실험용 시체, 실습 공간을 제공 받았다.
친구를 잃은 경험은 나를 전보다 대담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죽기 전까지 나는 늘 죽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 시신 기증은 정말 멋진 일이죠. 하지만 이 멋진 축제에서 식탁보를 조금만 끌어내리면 그 밑으로 썩은 나무가 보일 거예요.”
미국에서는 해마다 몇 만 구의 시체가 시체 매매 시장으로 유입된다. 이 시체는 전 세계의 연구원들과 의료용 기구 제작 회사, 제약 회사에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이 시체 매매 사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업이다. 이 사업에서 시체는 치킨과 별로 다를 것도 없이 부위 별로 절단되어 업자와 브로커, 고객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된다.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기증의 경우에서조차 기증자들은 자신의 시신이 어떻게 쓰일지 전혀 모른다. 시신이 중간 상인에게 어떤 식으로 넘겨지는지, 외과용 기구 제작 회사에 어떤 식으로 판매되는지 같은 정보를 전혀 얻지 못한다.
훈련을 받지 않은 화장장 인부들은 평균적으로 최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시체 매매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화장장의 한 인부는 화장로에서 재가 나올 때 그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재만 보고서는 머리가 없어졌는지, 어깨가 없어졌는지, 다리가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어요.”
시체 매매는 역사가 꽤 길다. 이 사업은 1700년대 후반, 외과의사들이 해부학을 배우기 위해 시체를 절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합법적인 시체 공급책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시체 도굴꾼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뉴욕이나 동부 해안의 공동묘지를 배회하고 다니면서 시체를 훔치는 데 빈틈이 없고 필사적이었던 사람들은 무덤에서 훔친 시체를 의사나 의과대학에 팔았다.
미국인들은 삶을 죽음과 분리해 생각하기 때문에 시체 매매업은 어느 정도 번창하고 있다.
남북전쟁 동안 의사들은 죽은 병사의 몸을 보존하여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시체에서 피를 뽑아내고 그것을 화학 물질로 대체하는 시체 방부 기술을 개척해나갔다. 특히 1865년 에이브러험 링컨이 죽은 뒤에 이 기술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링컨의 시신이 방부 보존되어 20일 동안이나 전국을 돌며 장례 행렬을 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미국인이 그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실제로 살아 있는 듯한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요즘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죽은 가족이나 친구의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많은 주에서 허가하고 있지만 누구도 시신의 입관을 집에서 치르려 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직접 시신의 매장이나 화장을 준비하지 않고 장례 지도사들에게 모든 절차를 위임한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과 점점 거리를 둘수록 의사나 연구원 들에 대한 존경심도 점점 커진다.
“뭘 해줄까? 넌 울지도 않는구나. 그래, 그래. 울지 말으렴.”
짐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괜찮아요, 엄마.”
짐이 속삭였다.
“내가 점점 작아질수록 반대로 점점 커지는 게 있으니까요.”
브라운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였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을 못 견뎌했다. 유가족들의 짧은 방문에서 그는 가족들이 마음껏 울게 하고 슬퍼하도록 내버려두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들이 ‘드라마’를 찍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상황을 경멸하다시피 했다.
크로포드는 이후에 브라운에게서 머리와 척추 스물두 개를 사가고 1만 3,200달러를 지불했다. 타일러는 이 거래에서 2주 동안 시체 스물두 구를 절단한 대가로 5,000달러를 챙겼다.
날마다 팩스로 더 많은 주문량이 들어왔다.
무릎 표본 하나, 어깨 표본 둘 각각 포장해주세요.
오늘 오후에 얘기했던 대로 무릎 열 개, 어깨 옆 개, 손목 표본 한 개가 필요합니다.
몸통 두 개. 60대 여성 선호. 몸무게는 70킬로그램 정도. 척추 수술 받은 적 없어여 함.
케어링 화장장 같은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브라운에게 보내는 까닭은 단 한 가지. 바로 화장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왜 사지가 절단되어 있는 걸가?’ 라다는 몹시 궁금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화장 뒤에 재가 식으면 그것을 휘휘 저어서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간다. 유가족들로서는 성긴 뼛가루를 받는 것보다야 고운 가루에 가까운 재를 받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이 과정 때문에 오히려 유골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화장을 하게 되면 DNA가 파괴되고, 뼛조각이 없이는 그것이 사람의 것이었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시신은 무척 소중한 상품이다. 그리고 일단 절단되고 나면 그것은 절단 이전의 온전한 시신일 때보다 훨씬 더 가치가 올라간다.
“일단 한번 몸통을 녹이고 나면 액체가 나오죠. 그 다음에는 ‘관장(灌腸)’을 합니다.”
이미 죽어 있는 시체에 관장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페르나가 답해주었다.
“우리가 고안한 장비로 직장(直腸)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모든 브로커가 시체 관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페르나가 몸담고 있는 세계의 경쟁이 알게 모르게 살벌한 탓이다
나는 그에게 펜실베이니아에서 플로리다까지 어떻게 시체를 옮겼냐고 물었다. 이것은 대답하기에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스테이크용 고기를 싸듯이 간단히 싸서 우편으로 보낸다고 했다.
“왜 우리만의 운송 수단을 고안해내지 않았냐고요? 그야 운송 회사를 부르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니까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었죠.”
“우리는 해부 표본 운송의 선두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에어웨이즈의 판매부장 마이크 니모프가 말했다. 그는 에어웨이즈는 페덱스와 UPS로 한 달에 부위 여든 개를 운송한다고 밝혔지만 그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시체가 운반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요.”
마이어스와 샬로프, 페르나는 시체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시체를 얼리기 전에 시체를 ‘빅스 베이포럽’이라는 감기약으로 마사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해동되면서 오래된 치즈처럼 구린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상큼한 박하향이 난다.
페르나는 시체를 만져보는 내 모습을 자세히 보는 듯했다.
“이것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나요?”
내가 물었다.
“시체 때문에요?”
“네.”
“뭐, 꼭 그렇진 않습니다.”
그는 마치 내가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에는 얼굴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름도 없고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요.”
비뇨기과 전문의 하나가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콩팥은 콩팥일 뿐이지만 성기는 사람이라 이겁니다.”
페르나가 말했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말입니다, 일주일에 시체 여든 구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몸통은 해체되어 있었어요. 등뼈를 빼낸 거였죠. 머리 부분은 치과의나 성형외과의 들이 썼습니다. 몸통은 ‘누가 그걸 써?’ 하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요.”
페르나는 나에게 이 말을 하며, 회사는 시체 한 구당 2만 달러 정도면 살 수 있고, 그걸 잘라 조각으로 내어 20만 달러에 팔 수 있다고 했다.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최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동의서는 대개 불명확하고, 시신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쓰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정보만 들을 뿐이다. 또 기증자 가운데 대다수는 의과대학이나 기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 의사들이 자신들을 배신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UCLA는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한 최초의 의과대학이다…. 1996년, 기증자 가족들은 UCLA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유가족들은 기증한 시신을 매장하거나 장미 정원에 뿌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서 자신들이 사랑했던 가족을 의료 폐기물 더미에 넣어 태워버린 학교 측에 분노했다.
기증자들과 그 가족들은 결코 돈을 바라고 기증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가 브로커들에게 시신을 파는 순간 그 가족들의 뜻을 저버리게 된다. 시체 브로커들은 어쩔 수 없는 장사꾼인 까닭에 일단 시체를 사게 되면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학교는 업자들에게 시신을 넘기면서 시신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쓰이고 그 값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직까지도 브로커를 고용하는 일은 학교에서 수입을 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어떤 의과대학에서는 정기적으로 시체 브로커들과의 계약을 맺는다.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대학, 캔자스 의대, 워싱턴 의대, 툴란 스쿨, 루이지애나 보건 센터에서는 모두 시체 브로커들과 함께 일을 해왔다.
2002년, 해부학부 학장 제럴드 커비와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그는 스칼리아의 회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나는 내셔널 아나토미컬이 뭐 하는 회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 뒤 그 회사와의 관계를 시인했다.
“내셔널 아나토미컬은 브로커로 활동하는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받는 시신 3분의 1가량은 내셔널 아나토미컬에 팔았습니다……. 판다는 말이 듣기에 별로죠? 하지만 나도 어떤 게 적당한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사람드은 보통 옷이든 신발이든 자신이 선물로 받은 것은 팔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시체를 파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런 결정을 한다. 특정 학교에 자기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 말고 다른 곳에 시신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학교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외부로 시신을 옮겨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지뢰 실험. 그것이 툴란의 기증자들이 겪게 되는 하나의 예였다.
그는 신문 부고란을 보고 있었다.
“이게 나한테는 경제 섹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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