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NO35(통권163)
HISTORY
열정도, 욕정도 있는 남자
다음 해가 되어도 그의 어두운 마음은 거둘 수 없었다. “20장이 넘는 음반, 340여곡의 음악으로 한 달 음반 매출이 4만 원이에요. 1990년도 한 달 매출 4000만원에 비하면 1000분의 일로 떨어진 거죠. 이젠 익숙해져 그런가 보다 해요.(미소)” 2006년, 11월, 9집 앨범 <Hwantastic>을 낸 뒤, 그는 급기야 언론에 공표했다. 더 이상 CD를 발매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CD가 없어질 거란 생각을 해서였다.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단 생각에서였다. 그는 음악에서 ‘사운드’를 무척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음반 산업은 사운드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다. 보존되고 진보해야 할 것이 오히려 퇴보하는 분위기였다. 소리의 울림으로 얻는 감동을 모르는 음악 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발언과 모순되지 않게 그는 <Hwantastic> 앨범의 ‘사운드’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했다. 자신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래미 수상자인 데이비드 캠벨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다. U2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클라크 저메인이 믹싱을 맡았다. 그 외 모든 부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이 기울인 땀에 대해 그는 만족했다. 그는 주저 없이 언론에 말했다. “스피커로 음향을 듣지 않는 세대지만, 정말 좋은 소리를 뽑았어요.”
공연이 잡히면, 그는 체력 관리를 바싹 했다. 달려도 그냥 달리지 않았다. 걸을 때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닐 정도였다. 평소에 먹지 않던 건강식까지 억지로 먹었다. 고기도 일부러 먹었다. 지금은 남이 된 채림은 그런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빠가 이래요. ‘아니 애들 코 묻은 돈 뺏으면서 내가 이만큼 안 해서 되겠어?’”
DEEP FOCUS
지난 5년
영화한테는 더 이상 지킬 대상도 싸울 대상도 없었다. 오직 살아남아야 했다. 시장 논리를 따라잡아야 했다. 드라마는 진작부터 해온 일이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음악이 몰락한 건 음악이 음악이 아니어서였다.
이명박 시대는 활자의 시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눈물이 아니라 변명으로 당선됐다. 투표율은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가장 낮았다.
Another view
선수들이 최고로 치는 여자는 적당히 예쁘면서 늘 웃어주는 상냥한 애들이다. 원더걸스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예쁘고 어리고 가슴 큰 소녀들이 열심히 온몸을 흔들어주는데 싫어할 리 없다.
15세에서 19세까지, 스무 살 안쪽의 다섯 명의 아이들은 1980년대 레트로가 콘셉트라 했다. 그건 여러 가지를 의미할 거였다. 우선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등은 대놓고 촌스럽게 가겠다는 것. 단순한 디스코 동작과 리듬을 널리 응용하겠다는 것. 쉽게 쉽게 누구에게든 부담스럽지 않게 가겠다는 것. 아이돌 그룹 팬덤의 로열 팬층으로 꼽히는 십대뿐 아니라 언니, 오빠 삼촌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하겠다는 것. 그들의 셀링 포인트는 적중했다.
이런 소녀들이라면,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에 부담이 없을 거였다. 그 기세를 탄 게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일 뿐이다. 아저씨들의 정체성 좀 ‘물 위로’ 드러냈기로서니,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언제나 소녀들은 그들의 로망이었다. 소년들이 언제나 지치고 힘든 언니들의 귀염둥이였던 것처럼 말이다.
패� 독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 회의를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의견들이 있다. “연예인 별로예요. 관심없어요. 옷 잘 입는 여자가 궁금해요.” 물론 언제고 통하는 VVIP급 남자 연예인은 열외로 치고 하는 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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