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씬
가기 싫은 회식에 가서
마시기 싫은 술을 마시고
욕하기 싫은 사람을 욕하다가
위장에 총알을 맞은 듯 후퇴를 한다
여자친구에게 유서를 쓰듯 전화를 하고
전신주 아래 지뢰 매설병을 지나
불타는 호프집들을 지나
홀로 집으로 가는 길
사격신호처럼 신호등에 불이 켜지고
칼에 베인 듯 갈라지는 차가운 새벽
입김 사이 알코올 분자들이
꾸역꾸역 말라붙어가고
파편처럼 날아다니는 새벽 비둘기들
안개가 죽어 안개꽃이던가
승리를 향해 돌격하던 직장인들 쓰러진
언덕배기 아파트들 입구에
쌓아놓은 쓰레기봉투 옆에
병 겨누는 포장마차
늘 지나가기만 하고
돌아오지는 않는 새벽 전철
막노동 나가는 아주머니 비닐주머니 속에 목장갑이 보이고
빙글빙글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싶은데
열차는 잘 오지 않고
다음 월급타면 할부로
갑옷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
이 전쟁이 끝나면 나는
뭐가 되어있을까
과연
끝나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