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기다려야 온다

 

 

 

여인을 기다리는데 캄캄함이 왔다

시를 기다리는데 졸음이 왔다

기다리는 건 오지 않고

기다릴 땐 몸이 오그라들었다

노인들이 오그라드는 게 원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기다림은 빨대 꽂아 나이를 쭉 빨아먹었다

더 이상 기다릴 게 없자 조용해졌다

조용하자 잠도 조용히 오고

조용하자 캄캄함도 제 색을 찾았다

아무도 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 틈에 하루가 다녀갔다

하루가 다녀간 길을 따라

단추를 꿰맨 것처럼 맥주 캔들이 늘어서있다

세상이 이렇게 빈 듯한데

자꾸 어디에 나를 채우고 싶다

안주 하라고 나를 무료로 나누어주고 싶다

그래서 또 술 취한 여인을 기다린다

비틀거리는 시를 기다린다

자꾸 쪽 빨아 가버리는 빨대구멍에 대고

훅 숨을 불어 놀래키고 싶다

기다리는 게 오지 않을 땐

맞춤법도 다 흩트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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