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나쁘진 않아, 여유만 있다면."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보통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생각이 난다.

오늘처럼 간혹 정시 퇴근을 하고 여유를 느낄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여유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는

"서울도 나쁘진 않아, 여유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유가 있으면 서울도 좋다는 생각은 여유가 있을 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생활이란,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면서도

여유를 제공 할 때는 매우 드물고

따라서 여유 없이 살아가는 와중에는 도무지

서울을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고, 서울을 좋아할 수 있는 상황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서울도 나쁘진 않아, 라는 생각이 여유 있을 때 떠올랐다가

다시 여유가 없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서울에서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사고 방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여유가 있다면 서울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어떻겠는가.

제기랄 나는 훨씬 괜찮게 서울을 느낄 수 있는데 이렇게 바빠서 못 느끼잖아.

라는 불만과 동시에 여유에 대한 갈망을 불태울 것이다.

그럴 경우, 지금의 여유 없음이 더욱 더 짜증이 나고

바로 한 발 자국 옆에 그늘을 놔두고 땡볕에서 억지 노동하는 것처럼

회피의 욕구와 함께 조바심을 느낄 것이고

종래에는 지금의 여유 없는 생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안달할 것이다.

 

문제는 서울에서 여유를 느끼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여유를 소유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생활, 돈, 직장, 네트워크 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종래 서울을 떠나야만 먹고 살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여유 없이 바쁘게 생활 하는 중에는, 별 생각 없이

서울이 어차피 살기 힘든 곳이지 뭐, 라고 귀 막고 시야를 좁히고

고개 숙이고 앞만 보며 살아가는 게 견디기가 더 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도 나쁘지는 않아 여유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은

여유가 있을 때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며

여유가 없을 때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기에 유리하다.

그래서 우리의 머리는 여유가 있을 때만,

그 여유의 가치를 우리에게 감상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림의 떡을 보았을 때, 떡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 느끼도록 하고

실제 떡을 보았을 때는, 떡으로 느끼도록 알아서 조정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

여유가 있을 때, 그 여유 있음의 가치와 여유 있을 때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서 고정시켜 둔다.

 

이젠, 바쁘고 여유 없이 일하다가도 틈틈이

그래 서울도 나쁘진 않아, 여유만 있다면 이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한 내 반응이 어떨지는 모른다.

짜증이 치솟을지, 여유를 얻기 위해 더 빠듯하게 일할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걸...이라고 생각할지.

 

중요한 건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실적으로 생각하는 거다.

어쨌거나 여유만 있다면 서울도 나쁘진 않다는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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