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보고 듣는 얘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상상력을 키워라.
상상력이 중요하다.
상상력을 막지 마라.
그런데 이 말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상상이 참 쉬운 일처럼 생각되고는 한다.
하지만 해보면 안다.
상상은 무척 괴롭고 힘든 일이다.
물론, 작가들이나 창작하는 사람들은 상상을 즐긴다.
하지만 그게 괴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상상이 즐거운 이유가,
괴로운 현실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일 때도 있다.
이건 상상이 즐거운 이유라고 할 수 없다.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방법에 더 가깝다.
그런데 또 딱히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상상 속에는 상상 속에서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이란 일종의, 정신에게만 해당되는 현실인 것이다.
상상은 리얼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진짜처럼 느껴야 좋은 상상이라는 것이다.
캐릭터를 하나 상상한다면
그 캐릭터의 이름, 성격, 버릇, 가치관, 외모, 털의 많고 적음, 냄새와 발소리까지 상상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이미 정신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상을 긍정적이고 쾌락적인 쪽으로만 한다면 물론 괴롭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늘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안 좋일,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는 동안, 내 정신은 불행한 미래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불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은 당연히 괴로운 일이고
하기 싫은 행위이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숙소도 정하지 않고
돈도 얼마 없이 떠나기로 했다.
아무런 예정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상상이 된다.
잠은 어떻게 자게 될까? 나는 어디로 발걸음을 향하게 될까?
파리에서처럼 게이를 만나게 될까?
가방을 도둑맞진 않을까?
중간에 돈이 바닥나진 않을까?
갑자기 설사가 나면 약국에 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영어로 설사가 뭐지?
등등. 마구잡이로 상상이 시작된다.
결국, 내가 바라던 대로 되고 있다.
언제나 상상을 가로막는 것은 예정과 계획이다.
예정과 계획을 없애자, 상상은 거침없이 발동한다.
다만, 그것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초조하고, 기대하고, 궁금하고, 그런 것들이다.
상상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일본 어느 지역에 가서 유명하다는 어느 맛집에 가서 그걸 먹기로 계획을 세운 사람은,
일본 어느 지역에 가서(이미 인터넷 등으로 보아 두었다)
어느 맛집에 가서(이미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그걸 먹고 있는 상상 정도 밖에는 할 수가 없다.(대충 자료를 통해 그 맛이 어떤지도 감이 잡힌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정도의 상상력은
상상력을 키워라.
상상력이 중요하다.
상상력을 막지마라.
라고 떠들어대는 그런 상상력에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마치 상상이 별 것 아니고 쉬운 것처럼 들리게 한다.
하지만 상상은 괴롭다.
다만 그 괴로움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생각지도 못한 것이야 말로 상상이 아니겠나)
것이 떠올랐을 때의 즐거움은 어느 것에도 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괴롭더라도 할만 한 가치가 있는 것", 이
상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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