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일요일 서울역
용기에는 가속도가 필요함.
우선 출발하고 나면, 그 후에 용기가 더 잘 보임.
여행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도둑이다.
혼자 여행할 때는 특히 더 신경이 쓰인다.
화장실 갈 때도 짐을 가져가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심리적 부담이 크다.
눈과 손이 1인분 밖에 없기 때문에
24시간의 교대 없는 짐 관리가 피곤하다.
세상에 도둑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어떨까?
세상 모든 사람이 도둑질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또 그것을 지킨다면?
우선 자물쇠란 자물쇠는 다 사라질 테고
문의 개념도 달라질 거다.
그건 정말 편하고 흥미로운 세상이겠지.
서울역처럼 깨끗한 현대식 건물도
공중화장실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한번 쓰고 떠나버리는 공중화장실을 대할 때의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되비치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화장실을 쓴다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남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깨끗하게 공중화장실을 이용합시다.”라고 말해도
화장실에 가보면 더럽다.(그렇게 예상된다.)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 “뿌린 대로 거둔다.”
라는 말을 사람들은 안 믿는 걸까?
그렇다. 그리고 아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너무 믿는 나머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깨끗하게 썼는데 깨끗한 공중화장실로 결과가 돌아오지 않고
더럽게 돌아올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럽게 이용하고 더러운 결과(뿌린 대로 거둔다)를 감내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해자의 욕구를 갖고 있고,
그 욕구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공중화장실이다.
나는 오늘도 서울역 화장실에서 피해자가 되어 나오고
증오를 품고 나오며, 나중에 화장실을 더럽힐 일이 있다면
“그래, 난 이미 피해자인걸.”이라고 정당화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호텔’이나 ‘타워펠리스’처럼
벽을 쌓고 출입을 제한하는 행태를 비난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들은 다만 깨끗한 화장실을 쓰고 싶은 것이다.
같은 화장실을 쓰는 자기 계급을 벗어나
상류 계급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 배설의 욕구처럼 가장 기초 욕구이기 때문이다.
벽을 쌓고, 공공을 믿지 않을 때,(나 자신과 돈과 권력을 믿을 때)
우리는 깨끗한 화장실로 보답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