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목요일 JR나라센
고개 숙이는 즐거움이(2)
교토역에서 나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교토역은 철도와 플랫폼은 그대로 두고
역사를 새로 지었는데, 마치 철도 플랫폼들을 가운데
품고 거대한 성벽을 세운 듯한 형상이다.
이 새 건물은 신용산역보다도(서울역보다도) 훨씬 거대해서
정말 거침 없이 설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설계한듯한
느낌이고, 당연히 제약이 없는 만큼 훌륭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호쾌하다는 느낌이다.
이 안은 크게 3곳으로 이뤄지는데 양 편은
호텔과 이세탄 백화점이고 중앙이 전철을 타고 내리는
출입구이다. 이렇게 거대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 때가 있는데, 일본 전통 가옥을
들어설 때 고개를 수그리는 것과는 느낌이
대조적이다. 전통 가옥을 들어 갈 때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내가 크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크지만 겸손하게
안으로 숙이고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 자세가 된다. 반면 교토역처럼 거대한
현대식 건물에 들어설 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기는커녕,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움츠러들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의 아버지는 이런 교토역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가 보다. 자신 앞에서
남들이 기가 죽고 움츠러들길 바랬다. 문제는
그게 기껏해야 어린 자식들에게나 통했다는 것이고,
알고 보면 별 거 없네 하며 사람들이
교토역에 대한 부담을 쉽게 떨쳐버리듯이
알고 보니 별 게 없었던 것이다.
어린 꼬맹이들에게 아버지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존경하는 닮고 싶은 아버지와 존경은 커녕 원망하는
보기 싫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아버지이다.
불행히도 내게는 아버지가 후자 쪽의 인물로
받아들여졌고, 어릴 적 내 소원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내가 스스로 고개 숙이고
싶은 아버지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내
아버지는 자식들로 하여금 스스로 고개 숙이게
하기 보다, 억지로 움츠러 들게 하고,
피하게 하였다.
그래서 쉽게 타인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해버린 나는, 진정 누군가를 존경하고 싶은
욕구가 내내 욕구불만으로 쌓여있고
그게 나를 때때로 우울하게 한다.
해소되지 못한 성욕처럼
나는 여전히 존경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 중에
가장 안타깝고 욕심나는 부분이다.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눈 반짝이며
떠들던 애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분명 사람은
스스로 고개 숙일 때의 즐거움을 아는 생명체이다.
그건 단지 자신의 아버지나,
전통 가옥을 들어설 때 뿐만은 아니다.
그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절과 교회 예배당이다.
그들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내가 겸손할 수 있고 무언가를 마음껏 믿고 존경할 수
있다는 현실에 안도하고 감동한다.
문제는 그들이 그곳을 나서는 순간
다시 교토역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과,
그리고 절이며 교회가 갈수록
거대한 현대건물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마치 감옥이나 성처럼)
교토의 전통 가옥을 들어설 때처럼
신발을 벗고 스스로 고개 숙이고 들어서는 게 아니라
거대한 교토역처럼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게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법문이나
설교조차 강압적으로 머리 누르던
옛날 내 아버지처럼 행하고는 한다.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28 - 배부른 자전거 (0) | 2008.07.23 |
---|---|
여행 27 - 교토와 나라 사이 (0) | 2008.07.23 |
여행25 - 인형과 동물 (0) | 2008.07.22 |
여행24 - 과감한 여유 (0) | 2008.07.22 |
여행23 - 횡단보도가 많아서 (0) | 2008.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