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0일 목요일 오전 UCC카페

 

 

 

과감한 여유

 

 

 

 

한국에 있을 때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오전 10, 11. 한창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까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여행 생각이 간절해지곤 했는데

정작 일본에 와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오늘은 오사카, 내일은 교토, 모레는

나라, 숙소는 어디로 잡고 저녁은 어디서 먹고

계획 짜기에 바쁘다. 무론 이런 계획 짜는 맛이

또 여행의 맛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내가 진정

원하던 게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쁘게 여행 일정을 짜는 건,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돈으로 가급적 많은 것을 보고, 더 맛있는 걸

먹음으로써 보다 만족하려는 습성인데, 다시 말해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법이다. 맥도널드를

갈 거면 점심 때 가자. 런치 세트가 더 싸니까.

이득이잖아. 하는 일상 속에서의 현실적인 습성이

여행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이 과연 현실로부터의 일탈이라는

여행이 지닌 가장 가치 높은 만족을 주고 있는 걸까?

점심 시간에 맥도널드에 가면 물론 값이 더 싸다.

그러나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줄을 길게 서야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 감내한다. 경제적 만족을

위한 선택이다. 이게 현실논리다.

이 논리가 여행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이미 그건

여행이 아니라 현실일 것이다.

어제 기요미즈데라에서 우연히 들려온 한국말

실컷 봐 둬, 언제 또 오겠어에서 그 여행의 현실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은 왜 실컷 즐겨, 실컷 감동해

라고 말하지 못할까. 즐겁거나 크게 감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요미즈데라라는 장소가. 그렇다면 그 크게

즐겁거나 감동적이지 않은 장소를 왜 그리 빨빨거리며

봐 두는 걸까. 이런 데, 이런 곳, 저런 데를 가 봤다. 여기

사진도 있잖아.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행 중의 감동보다는 여행을 만족스럽게, 알차게

잘 다녀왔다는, 그래서 결국 성공적인 여행이었다는

만족이 필요한 것이다.

(여행이 쇼핑으로 일관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현실적인 만족을 위해 여행은 빈틈 없고 바빠지고

즉석 사진이나 3분 컵라면 정도의 만족으로 나열되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그거다.

현실로부터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슬프게도.

 

소수의 진정한 여행자를 제외하고는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감동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게 우리의 여행이다.

주렁 주렁 현실을 매달고 다니며 다만 장소만 바뀌는 것.

 

나는 지금 2시간 째 교토역 부근, UCC커피점에서

토스트와 커피 2잔을 마시며, 거리와 하늘과 햇빛과 그늘,

클래식 음악과, 일본 여성 서버의 귀여운 목소리와,

홀로 담배 피우는 일본 아줌마와 아저씨들, 트럭 운전수,

포르투갈 여행자들, 신호등, 미니스커트 입고 자전거 타는

여자가 지나간 보도블럭 등을 감상하고 있다. 지금이 너무

평화롭고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벌서 2시간이나 지났어? 빨리 나라로 출발해야 하는데.

JR타고 나라에 가면 한 시가 다 되겠네. 그럼 또 어디 가야

하고 이런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데 내가 짠 계획과

일정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미스터 빈이라도

이렇게 엉뚱한 여행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정상인들만이 이럴 수 있다.

몸에 벤 현실 습성이 도무지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도무지.

 

내가 나를 낳아서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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