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의 골목길에서
작게
작게?
좀 더 작게
어느 날 소주 병 어지러운 뒷문 밖에서 소근거리는
멸종 위기의 너를 발견한다
오들오들 오징어처럼 떨고 있는 너에게서
멸종 위기의 나를 발견한다
작게
작게?
더 작게
작아지는 이 세계가 나로부터의 너의 멸종이라면
대체 내가 언제 승낙했을까
침 묻은 총알처럼
스치기만 해도 전역하고 싶어질
멸종의 운명
어제 밥 먹으러 들렀던
고대교수이자 유명시인이며 시인협회 회장이고 나이도 많고
나만 보면 똑바로 앉으라고 말하거나 물떠오라고 하고
본인이 촌사람임을 유난히 강조하는 오탁번 씨의 정년퇴임식에서 들은
그의 제자인가 동료인가 후배인가 어느 누군가의 말로는
다음 달쯤 <오탁번 시비>를 세운다고 한다
이 또한
멸종이 두려워
참다 못해 부서지는 이 골목
저 골목의 빈 병들과
같은 의미로 굴러다니는 소리일까
어지러운 골목길에
나도 시비 하나 멸종을 막는 부적처럼
써볼까 하다가
발톱을 두고 온 걸 깨닫는다
줄어든 연금 통지서를 보고서야
남편의 사망을 깨닫던 노부인처럼
저게 왜 저기 있을까
취객 바라보는 빈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