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힘, 반칠환, 시와시학사, (2005 초판1)

 

 

 

 

웃음의 힘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수평선

 

 

멸치 한 마리 솟구쳤을 뿐인데

일순 수평선은 수평을 놓친다

 

수평선은 언제나 수평이 없는 채로 수평이다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공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사람이 노래하자

제초제가 씨익 웃는다

 

 

 

 

 

 

 

 

 

 

이기주의

 

 

나는 너, 너는 나

우리는 한몸이란다

설법을 듣고 난 동승이 말했다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스님일 때보다

스님이 나일 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갈치조림을 먹으며

 

 

얼마나 아팠을까?

이 뾰족한 가시가 모두 살 속에 박혀 있었다니

 

 

 

 

 

 

 

 

 

 

 

 

 

 

 

 

경력으로 안 되는 일

 

 

남산 산책로, 오래된 나무들이 자꾸만 제이름을 까먹는지 사람들이 이름표를 달아주고 있었다

 

당년 여섯 살, 걷기 경력 5년차인 손주 뒤를 걷기 경력 70년차인 할아버지가 숨가쁘게 두둠두둠 뒤따르고 있다

 

 

 

 

 

 

 

 

 

 

 

 

새해 첫 기적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낱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통째로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비밀

 

 

몰래 사과 한 알에

핼리 혜성이라고 써놓았다

올 가을, 지구는 저 혜성과 충돌할 것이다

 

하기 전에

까치들이 헬리 혜성을 다 파먹었다

어휴! 지구는 영문도 모른 채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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