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인가, 똘스또이, 동서문화사, 2007(초판 22쇄)
분명히 말해두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자가 언제나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법이다.
우리는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갖고 얼마나 괴로워하는가!
하늘나라에는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소박함에는 언제나 매력이 있다. 어린아이와 동물이 지닌 매력도 바로 소박함에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논쟁하고 있을 경우, 그것은 그들이 논쟁의 쟁점을 그들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들은 뭔가 새롭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허영심 때문에, 얼마나 하찮은 말을 많이 하는지 모른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외면하는 까닭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배운 사람이 폭리를 취하고 착취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적개심을 부채질하며 사람들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믿을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인생이 꿈이고 죽음이 꿈에서 깨어나는 거라고 한다면, 내가 나를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개체로 보는 것도 꿈이 아닐까?
죽음이란, 우리가 그것을 통해 표상으로서의 이 세계를 인식하고 있던 육체가 멸망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통해 사물을 보고 있던 유리가 깨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입장은, 학자가 자신의 학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방에 들어간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는 그 얘기의 시작을 듣지 못했고 또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나간다. 그는 무엇인가 듣기는 듣지만 들은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계율인 ‘원수를 사랑하라’가 실제로 지켜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그리스도교도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진정한 그리스도교도로 인정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남을 흉내내는 데 쓰인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은 더 큰 행복이다.
부유한 그리스도교도는 발 없는 경주마라는 말과 같이 모순된 말이다.
너희들은 장난삼아 새끼 고양이나 어린 새를 괴롭히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면 틀림없이 그들을 말리며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냥을 나가 길짐승이며 날짐승을 쏘고, 경망에 나가고, 점심 식사에는 여러 마리의 산 동물의 주검으로 마련된 식탁에 앉는다. 즉 너희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말렸던 바로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다. 특히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잔인한 말을 서로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만일 네가 불행을 두려워한다면 너는 이미 불행하다.
모든 욕망은 그 자체 속에 벌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만족에 따르는 고뇌는 그 공허감을 폭로한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자식과 같다.
침묵 속에 사는 사람은 신의 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은 결코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이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단순한 ‘파도’가 아니라, 다만 이 세상에서 ‘파도’로 나타나는 영원한 운동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영원한 삶을 믿을 수 있다.
깊은 강은 돌을 던져도 조용하다. 모욕을 당했을 때 몹시 흥분하는 신앙인은 강이 아닌 웅덩이다.
현자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유롭다.”
자유는 자유를 찾는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얻어진다. 자유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 된다.
인류의 대부분에게 종교는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이고 해로운 미망은, 세상에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폭력이란 무지하고 야만적인 자가 민중들에게 그들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하기 위한 무기이다. 그러나 그 무기가 작용을 중지하면 효과도 중지된다. 반대로 설득은, 마치 강물이 우리의 관심이나 노력 없이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기울어져 있는 강바닥과 같은 것이다…
성직자가 지옥의 무서운 고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설교를 듣는 청중을 힘으로 천국에 데려가기 위한 것이다.
완전한 자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에 있으나 그 두 번째 자유는 적은 것을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타인의 잘못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신앙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수단으로 신앙을 도입하고 그것을 보호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을 강요하면 오히려 증오를 불러일으키듯, 신앙을 강요하면 오히려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성직자의 편협한 마음과 권력욕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학문’이라는 말 속에 지극히 하찮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유해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형법이니 하는 학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어린이나 야만인 같은 가장 낮은 발전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행위의 실행에 관한 학문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어린이들은 그저 살기만 하면 되지만 어른들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은 우리가 그 비열함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참으로 멋진 것이 될 수 있다.
의심해 보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견고하게 한다.
세상의 미움은 미움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미움은 미움이 없을 때만 풀어진다.
전쟁 또는 군인계급이라는 존재를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말라. 명백한 나쁜 일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논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을 왜곡시킨다.
파스칼은 말한다. 사람은 혼자서 죽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르지는 않고 단지 하느님을 숭배할 뿐이다.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모든 믿음의 밑바탕이 된다. 우리가 오직 그것에 의지해서 신을 인식하는 이성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면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 이성의 뛰어난 능력을 성실하고 공정하게 사용한 결과, 어떤 신앙상의 가르침에 모순이 있고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중요한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그 가르침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떤 책이 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믿기보다는, 차라리 내 이성이 신에 의해 주어졌음을 믿는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성직자 계급에게 늘 세뇌를 받아 머리에 깊은 골이 생긴 나머지, 그 뒤부터 그들의 기본적 사고방식이 그 골을 따라 흐르는데, 대부분의 경우 한평생 그 골속에서 헤매게 되어, 결국 진리의 정화나 전달은커녕 진리를 생각하는 것 자체, 진리를 발견하는 것 자체까지 불가능해지도록 열심히 애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너희들은 종파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누가 너희들에게 하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던가? “우리 교회의 사제님이다…”
논쟁을 하지 말라. 논쟁은 설득하는 데 가장 불리한 방법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못과 같아서 때리면 때릴수록 깊이 들어가 뺄 수 없게 된다.
말은 곧 행위이다.
악인의 마지막 피난처는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미덕이 아니다. 국가라는 시대착오적인 미신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조국의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그 조국을 존경할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모든 것을 거부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네가 기도할 때는 너의 밀실로 들어가라
만일 내 병사들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면 단 한 사람도 군대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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