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2008(초판7쇄)
코를 만진다는 것은 집게손가락 끝에 달린 눈으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거의 정상인 모양이군요. 문제는 이 사람이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러나 내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다. 문득 스구라토라는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뜻 모를 말이었다. 파올라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피에몬테 지방의 사투리라고 했다. 냄비를 깨끗하게 씻은 뒤에 쇠 수세미 같은 것으로 박박 문질러서 새것처럼 더없이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을 때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의 노동이지 사치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기억이 냄새나 불꽃처럼 피어나도록 강요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시간은 기대, 관심, 기억이라는 세 가지 순간의 연속이에요.」
잔니가 끼어들었다. 「자네 이거 알아? 자네는 포르셰보다 비싼 책들을 팔고 있어. 굉장한 책들이지. 그것들을 집어서 만져 보면, 5백 년이나 된 것들인데도 마치 인쇄소에서 갓 타온 것처럼 종이가 바삭거리거든…….」
(내 말이 상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런 말들 덕분이다.)
말하자면 글을 쓰는 차세츠키가 그 자신보다 똑똑했던 셈이죠.
태어나고서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한다면, 태어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전문적으로 말해서, 내가 태어난 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났다고 말해준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나쁜 교육을 받아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모든 것을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다. 어떤 책이나 잡지는 마치 상공을 날면서 풍경을 구경하듯이 대충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나는 지하실이 양수의 습기가 있는 어머니 자궁 속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락에 올라가 보니 이 공중의 자궁은 효험이 좋을 법한 열기로 그 습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무덤 속 같은 어둠에 갇혀 있던 종이가 햇빛을 견디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정말이지 종이가 손가락이 닿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내가 딴사람으로 변한 것은 분명한데, 나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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