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초판5)

 

 

 

 

 

 

5층 맞은편에 참한 그 애가 살았어.

예쁘고 창백한 소녀였지.

나폴리를 떠난 지 스무 해가 되었지만

난 아직도 밤마다 나폴리 꿈을 꿔.

 

.. 내 아들 녀석이

내가 공부하던 오래된 라틴어 책에서

뭔가를 찾아냈는데, 그게 뭐냐면, 팬지 꽃……

왜 내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지?

누가, 과연 누가, 그 까닭을 알까……

 

 

 

 아주 형편없는 작품들이라서 내가 쓴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청소년기의 여드름 같은 시들이었다. 내가 알기로, 사춘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는 단계인 열여섯 무렵에는 누구나 시를 쓴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인은 진짜와 가짜의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진짜 시인은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들을 파기하고 아프리카로 무기를 팔러 가는 사람이며, 가짜 시인은 졸작을 출간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시를 쓰는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나이에 흔히 그러듯이 사랑 자체를 사랑했던 것일까?

 

 

 

 뇌파가 평탄한 선을 그려도 어딘가에서 영혼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기계가 나의 뇌 활동을 일정한 한도까지만 기록한다는 얘기다. 그 한도를 넘어선 곳에서 내가 아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결국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냥 텅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어떤 원시인들은 성행위와 임신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하기야, 9개월이라는 시간은 한 세기만큼이나 길지 않으냐고 파올라는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폭격기들이 불빛을 볼 수는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므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안개 속을 걸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조용하게 굴면 안개가 더욱 힘을 얻어 우리의 발걸음을 보호해 주고 우리와 우리 거리를 적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가려 줄 것 간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성당 한쪽 구석에서 조용하게 묵상을 해.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거든. 하느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말이야.

 

 

 

 바로 그게 문제야. 성직자들은 말하지. 국왕이 너를 전쟁터에 내보낸 경우에는 살인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살인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하느님은 늘 그런 식으로 해왔지. 너희는 성서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 성서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쓰인 거라고 누가 말했지? 대답은 간단해. 성서야. 뭐가 문제인지 알겠지?

 

 

 

 우주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거야. 이렇듯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세상보다는 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낫지 않았을까?

 

 

 

 나는 무신론자가 아냐. 우리 주위에 보이는 것들, 나무들이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방식, 태양계, 우리의 뇌,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거든. 모든 게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어.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정신이 존재했던 게 문병해. 그 정신을 하느님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느님과 악을 조화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어떤 철학자들은 다른 견해를 내놓았어. 악은 하느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처럼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악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지.

 

 

 

 「혹시 세계가 하느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에게서 빠져 나온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에게서 오줌이 저절로 새어 나오듯이 말이에요.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것은 오히려 하느님 자신이 불완전했기 때문이야. 그렇게 불완전한 하느님이 별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별들은 다시 충전되지 않는 전지처럼 언젠가는 소진될 수밖에 없는 거야.

 

 

 

「내 생각은 간단해.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보기에 하느님은 악한 존재야. 성직자들은 하느님이 선하다고 말해. 왜냐고 물으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하지만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악하다는 증거야. 우리는 이따금 두통을 앓아. 고통이나 질병도 악이야. 하지만 하느님은 마치 우리가 두통을 앓듯이 악을 지니고 있는 게 아냐. 하느님은 악 그 자체야.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존재이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계시라기보다 고통스러운 느낌이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세계는 어떤 오해의 무기력한 산물이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 느낌을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벌거벗은 여인, 이는 곧 무장한 여인이다」

 

 

 

 아니요, 내 소중한 사랑,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누군가의 뒤통수를 사랑한다는 것

 

 

 

 I got rhythm, I got music, I got my girl, who could ask for anything more?(리듬을 얻고, 음악을 얻고, 내 여자를 얻었어. 누군들 이보다 더한 것을 바랄 수 있겠어?)

(조지 거슈윈의 뮤지컬 <Girl Crazy>(1930)에 나온 뒤로 많은 재즈 가수들이 애창해 온 노래 <I got rhythm>중에서)

 

 

 

 나는 내 심장을 조용히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싶어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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