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남자, 스와 데쓰시, 들녘, 2009(초판 1쇄)
소설의 세계를 슬픔으로 뒤덮는 일은, 비정한 말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선택이다. 작가가 등장인물보다 더 많이 울고 있을 수는 없다.
빨래
요즘 아내는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하리마 지방의 두 동자 전설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 두 명의 동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빨래를 말렸다고 한다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게 멋있잖아?
하늘을 날아다닌 게
그저 빨래를 말리기 위해서라는 게
아주 좋아.
요즘 아내는
베란다 빨래 장대에 기대서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어떻게도 말을 건넬 수가 없다.
귀에 달라붙기는 쉬우면서도 그 자체는 전혀 의미를 갖지 않는 말이라는 건 생각해보면 퍽 무섭다. 그것은 블랙홀처럼 인간을 빨아들여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삼켜버린다.
세상 모든 것에서 절망을 배우는 시기가 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먹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명제에 말할 수 없는 부조리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택하면 왜 인간은 불행으로만 치달을 수밖에 없는가.
나아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의지’의 욕구에는 최종적으로 아무런 목적도 없다는 점이다.
‘본능이란 목적개념에 따르는 행위와 지극히 흡사하면서도 목적개념이 완전히 빠진 행위이며, 자연이 행하는 다양한 조형 또한 이 본능과 마찬가지로 목적개념과 지극히 흡사하면서도 그것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이다…….’
나는 플리니우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매료되었다.
“…… 신이라 해도 결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은, 가령 그 스스로 원한다 해도 자살만은 할 수 없다….”
총의 환영은 사라졌지만 무언가로부터 ‘몸을 뒤집는다’는 반사충동은 개념화되어 내 안에 뿌리를 내렸다. 이윽고 말을 더듬는 버릇의 소멸이 찾아오고, 그 반동으로 언어적인 회의에 빠진 이후로 나는 통념적인 것의 이면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지극히 특수한 반골정신을 으뜸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한 사람의 <안드로메다 남자>의 탄생이기도 했다.
나의 행동에서 의미를 박탈하는 일. 통념에서 몸을 뒤집는 일. 세상을 통제하는 법칙에 대항하여 압도적으로 무관계한 위치에 이르는 일. 이것이 그즈음 내가 <안드로메다 남자>로서 시도한 저항의 모든 것이었다.
텔레비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제에 사로잡힌 모든 어설픈 연극들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내 꿈을 믿어요……>라든가 <좌절하지 말고……>라든가 <사랑은 지지 않아.…..>라든가 <순수한 하트>라든가 <그대의 반짝이는 눈동자……>라든가 <내일은 꼭 온다네……>라든가.
지금도 그런 말을 써넣는 족족 펜 끝이 썩어나가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다.
그의 주위에는 빈 껍질이 된 수많은 언어들이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스로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해탈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존재방식이기도 했다.
즉, 그가 표방하는 몸 뒤집기란 어떤 자리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예정조화적인 문맥을 답습하면서도 완전히 무관계한 위치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숙부에게는 청년기 이후로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글로 써지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다’라는 강박관념이 항상 따라다녔다.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부패해서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말은 점점 줄어들어간다.>
<나의 모든 언어가 ‘작위성’을 띤다.
내 손에 닿는 언어가 하나하나 부패하여 떨어져 내린다.
나의 안드로메다란 이런 작위를 탈피했을 때 비로소 안드로메다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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