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새끼들을 위해서
결사적으로 덤빈다.
피를 빠는 모기는
온몸이 찰 때까지
경건하고 순수하다.
목숨을 다 걸고 나면
남은 몸짓이 없어진다.
세상의 소리를 죽이는
피를 빠는 모기의 긴장.
목숨은 빛나는 한 순간의 힘,
죽은 척 살아 있기보다는
살다가 죽고 싶은 힘.
수컷 모기는 이슬을 마시고
가는 눈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허둥대는 암컷의 들뜬 눈에는
사랑은 피던가 이슬이던가.
늦가을 모기의 날개는
숨어 있는 한숨처럼 멀다.
낮게 날아가는 한 생명의 끝,
아프지도 앓지도 않고
모든 암컷의 모기만
피를 빨다 죽는다.
나는 이제 살아 있는 꽃을 보면
가슴 아파진다.
- <동생을 위한 조시> 중
게이의 남편
내 친구 지미가 죽었다
흰둥이 지미는 병원 초음파실 기사실장,
내 논문 문장도 도와주고 볼테르의 철학을 좋아한,
오른쪽 귀에 은 귀고리 당당하게 달고 다니던
동성연애, 게이, 착하고 똑똑한 호모.
샌프란시스코-호모들의 도시로 쫓겨간 뒤에는
버림받은 에이즈 환자들 위해 헌신한다더니
-죽은 내 친구들이 이 도시를 채웁니다.
밤이면 애인과 도시 위를 날아다닙니다.
손가락질 없는 사랑의 자유가 그립습니다.
편지 속에서 시들어 병드는 것을 알았고
병원을 그만둔 것 알았고, 어제 온 장거리 전화.
- 나는 지미의 남편이었습니다. 지미가 죽었습니다.
그곳 있을 때 많이 도와준 것 고마웠다고……
태평양 쪽의 목소리, 지미의 남편? 남자의 남편?
내 목소리는 계면쩍고 저쪽에서는 흐느껴 운다.
우는 것까지 어색하게 들리는 요원한 거리감의 전화,
사십을 겨우 넘기고 죽은 지미의 사랑 노래.
흥얼거리던 곡조가 미국의 저녁에 번져가고 있다.
며칠 동안 혼자서 긴 강이 흐르는 기슭에서 지냈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었고,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없었다.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었다.
- <이 세상의 긴 강> 중
휘닉스 파크로 가는 길은 간단하고 어렵게 짐작된다.
6번 국도에서 26km, 장평에서는 14km,
서울과 강릉의 중간쯤인 모양이니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어차피 고국에는 차가 넘치니까 고속을 저속으로 몰면서
저 산과 이 산의 저 속과 고 속을 어루만지면서
- <휘닉스 파크로 가는 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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