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2003(초판9)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새끼들을 위해서

결사적으로 덤빈다.

 

피를 빠는 모기는

온몸이 찰 때까지

경건하고 순수하다.

목숨을 다 걸고 나면

남은 몸짓이 없어진다.

 

세상의 소리를 죽이는

피를 빠는 모기의 긴장.

목숨은 빛나는 한 순간의 힘,

죽은 척 살아 있기보다는

살다가 죽고 싶은 힘.

 

수컷 모기는 이슬을 마시고

가는 눈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허둥대는 암컷의 들뜬 눈에는

사랑은 피던가 이슬이던가.

 

늦가을 모기의 날개는

숨어 있는 한숨처럼 멀다.

낮게 날아가는 한 생명의 끝,

아프지도 앓지도 않고

모든 암컷의 모기만

피를 빨다 죽는다.

 

 

 

 

 

 

 

 

나는 이제 살아 있는 꽃을 보면

가슴 아파진다.

 

- <동생을 위한 조시>

 

 

 

 

 

 

 

 

 

게이의 남편

 

 

내 친구 지미가 죽었다

흰둥이 지미는 병원 초음파실 기사실장,

내 논문 문장도 도와주고 볼테르의 철학을 좋아한,

오른쪽 귀에 은 귀고리 당당하게 달고 다니던

동성연애, 게이, 착하고 똑똑한 호모.

 

샌프란시스코-호모들의 도시로 쫓겨간 뒤에는

버림받은 에이즈 환자들 위해 헌신한다더니

-죽은 내 친구들이 이 도시를 채웁니다.

  밤이면 애인과 도시 위를 날아다닙니다.

 손가락질 없는 사랑의 자유가 그립습니다.

편지 속에서 시들어 병드는 것을 알았고

병원을 그만둔 것 알았고, 어제 온 장거리 전화.

 

- 나는 지미의 남편이었습니다. 지미가 죽었습니다.

  그곳 있을 때 많이 도와준 것 고마웠다고……

태평양 쪽의 목소리, 지미의 남편? 남자의 남편?

내 목소리는 계면쩍고 저쪽에서는 흐느껴 운다.

우는 것까지 어색하게 들리는 요원한 거리감의 전화,

사십을 겨우 넘기고 죽은 지미의 사랑 노래.

흥얼거리던 곡조가 미국의 저녁에 번져가고 있다.

 

 

 

 

 

 

 

 

며칠 동안 혼자서 긴 강이 흐르는 기슭에서 지냈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었고,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없었다.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었다.

 

- <이 세상의 긴 강>

 

 

 

 

 

 

 

 

휘닉스 파크로 가는 길은 간단하고 어렵게 짐작된다.

6번 국도에서 26km, 장평에서는 14km,

서울과 강릉의 중간쯤인 모양이니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어차피 고국에는 차가 넘치니까 고속을 저속으로 몰면서

저 산과 이 산의 저 속과 고 속을 어루만지면서

 

- <휘닉스 파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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