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6 너에게 가야 한다
하루 중 너 다음으로 많이 하는 생각이 돈이다.
따뜻한 만큼 차가움을
깨끗한 만큼 더러움을 생각한다.
돈이 더러운 건 그것이 부정해서라기 보다는
돈을 생각하는 이유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맹목적이며 과시적인 욕구,
내가 컨트롤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과
도시 문명에 의해 조종되는 욕구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그 욕구로부터 빠져 나오기 보다
그 욕구의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팔과 다리를 놀리기 때문이다.
점프, 점프, 점프!
기분 좋게 네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의아함을 느낀다.
아직 만나지 못한 너는 아직 만나지 못한 존재이므로
너와 함께할 미래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불안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지 못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비하면
없는 것처럼 조그맣다.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미래의 연인보다
이미 발을 담그고 있는 일과 직업, 성취, 돈, 그런 것들이 훨씬 더 불안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뻔히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무실 나란히 배열된 일곱 여덟 개의 책상.
그 중 일곱 번째나 여덟 번째 앉아있는 누군가.
그의 10년 뒤 미래.
그 중 두 번째나 첫 번째 책상에 앉아있겠지.
큰 걸음으로 다섯 걸음 이내.
내 미래와 내가 취득할 돈이 겨우 그만큼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끝날 까봐 두려운 것이다.
내 미래의 모습을 가진 자들을,
차 한 대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융자금에 허덕이고,
자식들의 학원과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조급해지는
그런 내 미래의 모습을
매일 회사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너는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낭만적이다.
너와 돈 다음으로 많이 하는 생각은 죽음이다.
그나마 너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면
내가 주로 하는 생각은 돈과 죽음이 되었을 테니
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죽음이 찰라이기 때문에 그런지,
죽음은 오히려 미래보다도 더 가까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심지어
돈은 죽음보다도 멀리, 미래보다도 더 멀리 있는 듯하다.
그리고 너 또한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미래 어느 시점에 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린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시공간으로 이뤄진 우주가 지금도 여전히 팽창해가는 것처럼
그 우주 시공간의 각각 좌표를 점하고 있는 너와 나는
우주의 끝과 끝으로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가는 기분이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그러므로 자꾸 돈과 성공을 향해 팔 젓고자 하는 욕망을 멈추고
시간과 공간, 효율적으로 배치된 사무실 책상의
그 책상을 따라 설계되기 쉬운 예정된 운명의 경계를 벗어나
발을 놀려야 한다.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너에게 가야 한다.
돈과 미래, 죽음보다도 더
너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