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입고 싶은 남방이 있었는데 (‘남방’이란 무슨 뜻일까? 외국 옷에다가 한자로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그 뜻을 짐작조차 못하겠군.)
지난주 세탁기에 넣고 돌렸더니 단추 하나가 떨어져버렸어.
집을 뒤져도 반짇고리가 없길래 뜯어진 채로 회사에 입고 나와서
혼자 사는 녀석에게 휴대용 반짇고리를 빌려서 단추를 꿰맸지.
어렸을 때는 양말에 구멍 난 것도 꿰매 신고 그랬는데, 하는 생각도 나고,
(좀더 커서부터는 구멍 난 채로 신고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난생 처음 바느질을 배우던 때도 생각이 나고,
그러면서 실을 풀러 바늘 귀에 넣으려 했는데 말야,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더라고. 바늘 구멍이 이렇게 작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식은 땀이 났어. 그러면서 예전에 실끝이 자꾸 흩어져서 바늘 구멍에 안 들어갔고,
그래서 계속 끝을 잘라서 다시 도전하고, 또 잘라서 도전하고, 그러던 시간이 떠올랐어.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실을 낄 수 있어서 안도했어.
그리고 단추를 다는데 뭔가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거야.
마치, 이 단추를 지금 이렇게 금요일 오전에 꿰매기 위해 살아온 것도 같다
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단추는 흉하게 달렸지, 단추 밑의 천에 바느질 자국과 실자국이 그대로 보이고
있으니까 말야. 하지만 뭔가 내 눈에는 반짝거려 보여.
이게 그 마케팅 용어로, 참여를 통해 그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애정과 관여도가
생성된다는 뭐 어쩌구 이론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사람은
바느질을 좋아할 수 있구나, 바느질을 좋아해도 좋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
혼자 산지 오래되면서 바느질 하는 모습을 통 구경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건 가족 구성원들에게만 허락되는 내밀한 볼거리거든.
가족에게 쓰는 편지같은 거야.
빌린 휴대용 반짇고리를 돌려주면서
어디 더 꿰맬 데는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어.
그리고 남방에 양 팔을 밀어넣고, 내가 꿰매 매달아 놓은 단추를 맨
마지막으로 채웠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고 바느질 자국이 없는 경지를 최고라고 하잖아?
좀 있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