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독
김아중 주연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 울어도 이쁘잖아!
어느 고독한 이들의 카페에 가입하고
슬쩍 슬쩍 아주 조금씩 둘러보다가 발견한,
울적한 기분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한 여성회원의 셀카 사진.
울적한 기분과 동시에
울적한 모습도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독’이라는 말에 붙들려 살아온 것 같은데
이 고독이라는 말에는 남들과 다름,
강함, 독립적, 의지, 자유로움 등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하자면 심지어 멋있어 보였다.
분명 고독은 아름다운 무엇이다.
여전히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다만 고독한 사람, 우울한 사람이
겉으로도 멋져 보인다는 것은 사실상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끌린다.
스타처럼 빛이 나는 존재에 매혹된다.
그러나 고독이란 빛이 없는 장소다.
고독에 빠진 자, 우울이라는 빛 없는 공간에 잠식된 자의 모습이
예쁘거나 멋지게 나오는 건
대부분 영화나 잡지 사진 속에서의 연출된 고독
조명과 기술이 가미된 우울일 것이다.
한 번은 내 친구가 매일 새벽마다
홀로 라면을 두 세 개씩 삶아 먹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글썽이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카페를 가득 채운 소음에 혐오감을 느끼는 고독은 보여주기 위한 고독이다.
적어도 고독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라도.
이것 봐 고독에 빠진 너의 삶은 나쁘지 않아. 넌 저들과 달라.
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고독이다.
반면, 홀로 자취방에 돌아와
홀로 있음을 보다 체감하기 위해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방에 앉아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김치 없이 라면을 삶아 먹고
이빨을 닦고 그러다가 남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 때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고독이다.
그것이 딱히 안 좋을 것은 없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지도 않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돈을 내거나
그 모습을 보고 반해버릴 사람은 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그 클럽 회원이 울적한 기분이라며 올린 예쁜 사진을 보며
호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이유가 나와 같이 울적한 기분을 공유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이 상처받은 자여서가 아니라
예쁜 얼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우울한 기분과 울적한 하루, 고독을 좋아하는 나의 모순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은 스스로의 내면이 어떻길 바라고
나의 내면이 나 자신을 감동시키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내가 구축해나가는 내 내면이 타인까지도 감동시키기를 바라지만,
반면 이성을 바라볼 때는 그 내면에 감동하기 보다
그 외모에 감동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좋아하면서도 빛과 화려함, 눈에 띄는 아름다움에 끌린다는 것이다.
울적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자.
고독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성.
울어도 예쁘잖아, 라고 말하게 되는 여성.
이런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내 선호를 발견할 때면
그래 나도 남들과 똑같구나.
고독과 깊이는 무슨.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