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길지 않은 회사 생활에서
내 눈이 가장 많은 시간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타의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향하게 되는 곳은 소위 직장선배들이다.
만약 누군가 ‘선배’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쓴다면
이 소설을 영문번역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senior’ 나 몇몇 단어가 ‘선배’를 대신할 영어로 후보에 오르겠지만
영어문화권에는 한국에서 말하는 ‘선배’를 대신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선배’라는 말은 묘하게 끈적거리는데
이 말의 끈적거림을 좀 두드러지게 시각화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랐지만 그 속 한국 커뮤니티에서 주로 성장한 한 한국청년이
한국에 와서 서툰 한국말로 ‘선배’ ‘선배’하며 그 동안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학습한
선배에 대한 자세나 가져야 할 감정을 미국식으로 큰 몸짓과 큰 목소리로 솔직하게 드러낼 때
우리가 지칭하는 ‘선배’란 걸 외형화시키면 저런 모습이구나 싶게 느껴진다.
잘 만들어진 조폭 영화에서의 ‘형님’이나
해병대에서 말하는 ‘기수’ 같은 것도
제각각 다른 문화권의 말로 번역되기 어려운 독특한 존재다.
아마도 다른 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런 독특한 ‘단어’들이
그 문화의 독특한 개성을 대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런 면에서 내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지켜봐 온 직장 생활에서의
한국적 개성은 단연코 이 ‘선배’다.
이 선배라는 개념은 참으로 정처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평소 대리, 차장, 부장, 국장으로 호칭하고
머릿속에서 그렇게 개념화 되어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술자리에서 자신이 ‘선배’임을 강조할 때
대리, 차장, 부장, 국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계급 사회가 무색해지고
그 무색한 구분을 갖다 버릴 수도 없고
그 무색한 구분만으로 생활하자니 퍽퍽함을 견디기 힘든 이 한국 아저씨들의 심정이
논리고 전략이고 나발이고 심지어 크리에이티브도 없이
술에 술이요 물에 물이다 하는 식으로 뭉텅뭉텅 흘러나올 때,
참 한국은 여전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인들은 술과 위로에 뛰어난 민족이라서
실제 직장 생활 안에서 조직과의 마찰이나 혹은 개인적인 괴로움을
해결해주거나 도와주는 선배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때 선배는 다들 대리, 차장, 부장, 국장이 되어 있고
그러나 그들의 심리 안에서는 ‘선배’로서의 자신을 느꼈던 것이고
밤에 술을 ‘사주며’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술과 함께 따라 어루만져주며
직장 상사로서 시작한 하루를 선배로서 마감하고 집에 가려 하는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도 계급 없이 이름만으로 부르거나
혹은 선배님, 후배님이 계급호칭 대신 사용되는 회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소식들을 들을 때면 우리 회사도 아닌데도 가슴이 뛰고는 한다.
어쨌거나 적어도 후배들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 말이 많아지는 선배들이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이 오를수록 더 조직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사장님 말 한 마디에 똥꼬에 바짝 힘주는 모습을 보면
저거다 저게 너의 미래다
라는 정보가 들어찬 주사바늘을 내 가슴팍에 팍팍 찍어대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신종 인플루에는 마땅한 예방약이 없다지만
적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침투할
상사눈치병바이러스의 예방 및 치료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게으를 시간이 없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10년을 매진한 회사 생활, 10년을 쌓아 이룬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태도가
사장 한 마디에 똥꼬에 힘 팍 주는 결과로 끝나서는 안 되지 않는가.
비록 그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조직이고, ‘성공’ 혹은 ‘보신’을 위한 처신으로 여겨지더라도.
앞으로의 10년이 똥구멍으로 향하도록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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