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고 마음은 어둡고.

회사 나오는 게 지겹고 마지못해지는 건

익숙함, 자극 없음, 틀에 박힌 일상, 반복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적으로 오전 9부터 오후 6까지

자리를 지키되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하라

고 하면 그 반복은 기다려지는 반복이고

멈추고 싶지 않은 일상일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그냥 반복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어찌해볼 여지가 없는 반복

이다.

나의 리듬과 나의 기분과 나의 컨디션과 나의 기호와 전혀 상관 없이

비나 우박처럼 쏟아지는 어떤 꺼리들에 의해

기계처럼 로봇처럼

눈이 침침해지는 미싱공장 여직공처럼

계속해서 맞춰가야만 하는 일상이 반복될 때

회사 나오는 게 지겹고 마지못해진다.

어쩌면 우리 샐러리맨들의 원형은 결국

태일의 가슴에 불을 붙였던 평화시장 미싱공장의 여직공들인지도 모른다.

미싱 대신에 컴퓨터, 단순 반복 대신에 조금 복잡한 일의 반복,

험한 말과 무식한 처벌 대신에 은근하고 세련된 방식의 처벌,

그리고 조직을 위한 몸과 마음의 고정된 자세.

내 자리와 월급 상실에 대한 두려움.

또 다른 미래와 또 다른 인생을 상상하는 기능의 퇴화.

시대가 어떻게 발전하고 우리의 의식주와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든 간에

만약 샐러리맨이 30년 전 그랬듯이 여전히 지금도

회사 가기 지겹다

고 느낀다면

결국 인류의 노동은 진화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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