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금요일에 모 커뮤니티에서 숙제로 50 50답을 하라고 해서

그걸 했다.

사람들이 날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모르겠음이라고 썼다.

금요일에 저녁을 먹는데 회사 사람들이

나더러 참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회사 사람들에게 그 얘길 들었던 것 같다.

대답하자니 그 대답이란 게 길어질 것 같고

그 대답을 듣고서 이해할 것 같지도 않고

정확한 설명도 힘들어질 것 같고

그래서 역시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근 한 달 전부터

여자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에

소개팅도 하고,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는 사람과의 술자리도 갖고,

파티도 나가고, 모임도 나가고 그랬다.

자연히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상황에 의해서, 또 목적에 의해서, 또 분위기 조절을 위해서

또 나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 눈에 띄기 위해서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울고 싶어졌다.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죄책감을 느낀다.

이건 이를 테면 폭식을 했을 때 느끼는 죄책감과 같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흙을 구워서 빵을 만들어 먹는데

나는 배가 부르도록 먹고서, 음식을 남기고서, 자리를 옮겨서는,

또 다른 걸 처넣고, 처넣고, 처넣고,

일정 선의 만족감을 느낀 상태에서도

좀 더 좀 더 좀 더 하는 욕구에 폭식을 하다 문득 거울을 보면

이건 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행위 기준에 있어서는)심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식용 돼지라서 할 수 없이 칼에 멱 줄을 따이고

사람들에게 잡아 먹힌다면

기왕 그렇게 된다면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에게 잡아 먹히길 바랄 것 같다.

저렇게 배부른 상태에서 먹고 또 먹어대는 동족에게 먹히고 싶진 않을 것 같다.

말에 있어서도 그럴 때가 있다.

말을 하면서 말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농아학교 아이들과 잠깐 마임을 같이 연습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내가 유진규 몸짓에 속한 마임동아리에 들어 있었고

말을 하지 않고 교감하는 마임을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말을 배제한 상태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대체 무엇일까 알고 싶었던 것이었고

마침 말 못하고 못 듣는 애들 학교에서 애들 학교 발표회날

공연할 수 있도록 마임을 가르쳐 달라고 동아리 선생님에게 부탁이 들어온 것이었고

그 동아리 선생님이 동아리 멤버들을 동원해서 같이 데려 간 것이었다.

말을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떠벌리고 돌아온 날은 이 농아들이 떠오른다.

 

말을 너무 남발하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기억 못하는 경우가 있고

더 심한 경우는 그렇게 아무 것도 말해지지 않은 말을 하면서

말을 했다고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고

점차 자신의 말에 도취되어 말하기를 즐기게 되고

자신이 말하는 순간, 그러므로 자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를 강요하게 되는 순간

마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된듯한 묘한 각성체험에 흐뭇해지고

그런 것들이 무서워진다. 나이가 들어가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점차

나보다 어려지면서 자연스레

듣기보다 말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말할 것들이 많아져서 라기보다

조직이나 모임 상에서의 사실은 서열 따위는 없다고 하면서도 은연 중

묘하게 작용하는 서열에 있어서의 더 말하기 편한 위치가 되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

비참해진다. (이를 테면 학생이 교수에게 말하는 것보다 교수가 학생에게 말하기 더 편한 것은 교수가 학생보다 더 말할 것이 많아서가 아닐 것이다. 사적인 얘기, 학교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도 그러하니까. 어느 자리건 간에 누군가 누구를 상대적으로더 편하게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더 어렵게 생각한다면 그곳에는 서열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물론 이런 서열은 연애나 또는 연애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 비참한 날들.)

 

빨리 여자친구가 생겨서

재미있고 위트 있어 보이기 위해 순발력 있게 말을 뱉어대거나

최신 트랜드나 과장된 에피소드들(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을 떠들거나

재미 없는 얘기를 들으며 재미있는 척 해야 하는 자리들을

피했으면 싶은 마음에 쓴다.

말에는 주술의 힘이 있다고 세계 공통으로 증언하고 있으니

그 주술의 힘을 빌어 쓴다.

내가 말하고 싶어(더 정확하게는 떠들고 싶어) 말하게 되는 상황들로부터 벗어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말하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길.

대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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