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모두 다 미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뉴스가 되는 것 중에
외국 모 사진 작가의 단체 누드 사진이 있다.
수백 명의 남녀가 야구장 같은 데서 누드로 뒹굴거리거나
광장 같은데 누드로 엎어져있다거나
바닷가 바윗돌에 물개들처럼 널부러져 꿈틀거리는 사진들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사진들은 단체로 동일한 자세(손을 모아 머리 위로 올리는 여신 풍의)를 취하기도 한다.
이런 류의 단체 누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제법 있기 때문에 누가 원조인지 또 굳이 원조를 구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들은 목적에 따라 대략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환경보호나 야생동물 보호 등의 시위나 운동, 메시지 확산을 목적으로
작업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 작가의 예술 구현을 목적으로 작업된다.
개인 누드 사진이 아니라 단체 누드 사진을 찍는 이유는
개인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개인의 외침이 아닌 다수의 외침을 표현하기 위해서,
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닌 다수만이 표현 가능한 형태를 위해서.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장엄하며, 아름답고, 평소에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을
우리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단 체 사 진을 들여다보며
개 개 인을 구분하려고 애쓴다.
뒤엉킨 수 백 개의 누드 중에 가장 예쁜 몸매를 찾아내려 하거나,
미쳐 감추지 못한 누군가의 은밀한 부위를 탐색하거나,
또는 누군가의 늘어진 엉덩이와 뱃살을 지적하며 내심 자신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힘들게 찾아낸 미녀를 집중 감상하던 차에(물론 이때쯤 이런 미녀가 왜 이런 누드
사진을 찍었지? 하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미녀 등짝에서
굵직한 여드름이나 피부 트러블을 발견하고는 아쉬움을 달래며 다른 미녀를 탐색한다.
사진 작가가, 또는 어떤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또는 어떤 단체의 구성원들이
힘들고 어렵게 창피를 무릎 쓰고 또 여러 가지 제약과 조건들을 이겨내며
기껏 만들어낸 단 체 사 진을
우린(나만 그런 지도 모르지만) 단체의 구성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뜯어서 본다.
수 백 명의 누드를 각자 한 명씩 따로 찍지 않고
힘들고 어렵게 창피를 무릎 쓰고 또 여러 가지 제약과 조건들을 이겨내며
기껏 한 장소에 수 백명을 모아놓고 찍은 의미가
퇴색되는 순간이다.
아마도 우리 몸과 뇌에 체화된
구분하고 나누고 비교하려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아침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길에
도로 반대편 여성들은 모두 다 예뻐 보였다.
그리고 길을 건너가 정말 예쁜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다들 예쁘게 그냥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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