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는 아는 지식이 적었기 때문에 다양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태양광에 소독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선
상처 부위에 햇빛을 돋보기로 모아 치료하려 하거나
독거미에 물린 스파이더맨처럼
뭔가에 물려 보려고 용기를 냈던 적도 있고
또 묘하게 부풀어오른 종기와 그 속에 차있는 액체고름이
왠지 에일리언 같은 모종의 생명을 탄생 시킬 것 같아서
오줌 묻은 손을 일부러 여드름 주위에 발라 그 생명체의 탄생을 나름 촉진(?)
시켜보기도 하고
소독차 뒤를 따라 뛰며 구름 속을 뛰어간다고 좋아라 하던 시절에는
공회전하는 자동차의 하얀 배기가스 속에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구역질을 동반한 생명유지이탈 현상을 겪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게다가 그게 당연하게 생각되었는지 참 신기하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해프닝인 셈이다.
그러게 치자니 다른 많은 것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대륙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인디언을 죽여도 좋을 미개 생명체로 받아들인 것이나
때로는 인디언들을 나무 말뚝에 묶어놓고 기독교를 믿으라고 강요한 뒤
그를 거절하자 불을 질러 태워 죽인 신실한 목사님 이야기나.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이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말한 늙은 과학자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던 일이나.
그래,
정치 조상님들이나
그들의 후손 정치인들이나.
마누라와 복어는 시즌마다 주기적으로 패주어야 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던 마쵸들이나.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입에 달고 살던
한 여자 후배나.
(그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옛말들도 너를 자랑스러워 했을 거야.)
새로 이사온 영철이랑은 절대 놀지 말라고
나와 내 동생에게 신신당부 해놓고는 다음날 영철이형네서 고급 로봇 장난감을 갖고
해맑게 놀고 있던 이웃집 봉조형이나.
(형, 얼굴 본지 20년이나 됐지만 형의 기억만큼은 생생해.)
이명박 대통령의 경인운하 사업 진행 소식에
나는 벌써부터 가슴 떨린다, 이제 드디어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야.
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나.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마인드 컨트롤과 릴렉스 호흡법을 배웠어요.)
역사 교과서에 꿋꿋이 자리를 지켜오신 그 무슨 당로정 같은 분들이나.
또 걸프전쟁이나.
이스라엘 분들의 잔인하고 조직적이며 프로패셔널한
(그럼으로써 잔인함에 대한 인간의 잠재능력을 한껏 끌어올려주신) 수탈 및 깡패짓이나.
계란을 던지며 저항을 하자
너희 미쳤냐? 그러다 우리 삼성에 취업 못하면 어쩔래?라며
고대 학생회를 탄핵하던 고대의 참 영리하신 학생님들이나.
또 브레인 스토밍에 심취하여 이에 대해 강의도 하고 책도 내고,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들을 마치
브레인 스토밍 없이는 나올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며 10여 년을 살아오신
이들의 브레인 스토밍 예찬(결국 경제학자들에 의해 효과 없음이 증명된)이나.
미선이를 깔아뭉갠 미군 병사의 무죄 처벌이나.
초등학생 중 4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 봤다’라고 응답하게 하는
대한민국 교육이나.
그래 몇 년 전이던가, 태권도장에 다녀온 초등학생이 도복 끈을 문고리에 묶고
목 매달아 자살했는데 평소 하던 말이 “학원 좀 적게 다녔으면 좋겠어요”였다던
신문기사나.
어린 시절부터 시골 분교 선생님 되는 게 꿈이었던 내 친구 경혜가,
춘천 교육대학을 졸업 한 뒤 그토록 열심히 분교 지원을 했는데도
분교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계속해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가,
분교 가려는 선생이 너무 없어서 분교에서 근무한 선생들에게는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포인트가 주어지는 교육 정책 때문에
이를 노린 서울로 가고 싶은 선생들의 경쟁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터져 나오던
그 참을 수 없는 웃음이나.
(우리 선생님들 참 나이쓰해!)
이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했던,
그 당시엔 옳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바보짓들도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어투로 표현하자면,
그러니까 사람은 이런 걸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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