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좋은 말, 멋진 말, 많이 아는 것 아니다만

카드 내역서 어디에도 그런 말 찾을 수 없다만,

스스로에게 붙여줄 그런 말 하나

없다는 건 얼마나 가난한가

 

8만원짜리 쇼핑을 하고 그 기쁨이

스무 시간을 넘지 않는 것을 보고

평생 행복하기 힘들 것을 짐작한다.

 

바퀴벌레가 자꾸 기어들어가기 때문에

빈 밥솥에도 전원을 켜놓는 집에서

어린 시절과 몇 번의 추석을 보내는 동안

하늘은 오랫동안 찌거나 삶겨진 색으로

제 껍질을 스스로 벗겨내고

인간들의 절과

인간들의 기도와

인간들의 바퀴벌레와

인간들의 검은 입 앞에

자꾸 뚜껑이 열리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은 늙음으로

고기를 좀 더 작게 잘라라

명하였을 때

나는 꼼짝없이 피로해졌다

밤새 맺힌 유전자가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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