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천사 하나, 스포일링이 하고 싶다
포스터를 봐도 그렇고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크레딧을 봐도 그렇고
감독(겸 각본)의 이름(
영화를 보고 나서의 감상은 “끝내주는데!”였고
영화 참 못 만드는(반면에 비즈니스 감각은 오히려 뛰어난)
뛰어난 연출을 보여준 이 감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씬이 끝남과 동시에 “와! 이 결말을 사람들이 알까?” 싶었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스포일링하고 싶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짜릿한 반전이었고
배우들의 연기와 짜임새 있는 연출이 반전씬까지 미리 김 빼는 일 없이
힘을 응축시켰다가 한 번에 폭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잘 만들어진 스릴러를 보면
스포일링이 하고 싶어질까.
분명히 듣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일이고,
<아이다호> 이후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세계가 한국 시장에 갖는 의미를 분석하거나
영화 <더 로드>와 소설 <더 로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꼼꼼히 비교해보며
문학과 영화 사이에, 영상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등의 일에 비하면
‘이 영화에 이런 반전이 있더라’라는 발견 정도는 유치원생이라도 대부분 알 수 있는
대단히 하찮은 능력인데 그게 뭐 잘났다고 기껏
영화 남들보다 먼저 봤다고 떠들고 싶어질까 의문이 생겼다.
컴퓨터가 있었다면 스포일러에 대해 자료를 좀 찾아봤겠지만,
없으므로 잠시 단순 추측을 해보기로 했고 그 추측에 따르면,
그저 주목 받고 싶은데 주목 받을 쉬운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에
입이 근질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를 테면, 엄마에게 관심 받고 싶은 꼬맹이가 개념 없이 못된 짓을 하고
떼를 쓰고 난장판을 만들고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 듯 하다)
개봉 영화라는 사람들의 관심이 몰려 있는 컨텐츠를 먼저 흡수하고
그로 인한 정보 기득권자로서 “벌써 봤어? 어땠어?” 라는 약한 관심을 넘어
스포일링을 통한 썩을 놈, 죽일 놈 등의 보다 강도 높은 관심과
오랜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나오는 대사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고통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죽는 것보다 힘든 건 (스포일러를) 용서하는 일일 것이다.
타락천사 둘, TV를 사다
내 방엔 TV와 컴퓨터, 밥솥, 부모 등이 존재하지 않는데
귀를 씻는 맑게 정제된 음악과 함께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활자나 쪼아먹으며 집에 머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신림으로 이사한 후로도 도통 친구도 여자 친구도 생기지 않고
크리스마스 연휴 때부터 <에반게리온 파>, <셜록 홈즈>, <아바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아,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웰컴>(이 영화에 경의를!), <전우치>, <더 로드>, 그리고 오늘 <용서는 없다>까지를 주욱 혼자 보다가,
혼자 본 영화에 대해 혼자 얘기하다가,
나도… TV나 하나 살까… 싶어진 것이다.
타락한 모든 자들에게 그렇듯,
타락은 달콤하며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징하듯 내게도 다가왔다.
LG전자의 클래식 TV를 사고
뻔뻔하게 관악구 케이블방송 전화번호까지 받아 적어 돌아오며
아직 뭐하나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한껏 지친듯한 기분을 받는다.
방 벽에 기대어 멍하니 TV나 보며 삶을 보내도 괜찮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내 방식대로 만든다면 절대 저렇게만 만들지 않았을 프로그램들과
예능프로그램들의 짜집기한 웃음소리 이팩트와 너절한 자막들을
내 돈 주고 구입하다니 적잖이 씁쓸한 기분이다.
그리고 한편 달콤하다.
이로써 나도 한 발 남들처럼 히히거리고 킬킬거리며 주말 저녁을
고통 없이 보낼 수 있겠지.
이러다간 영화 보며 팝콘을 먹는 대 재앙의 날도 머잖아 찾아오겠는걸.
왕가위 감독의 새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 주성치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컴퓨터가 있다면 메일이라도 보내볼텐데.
에필로그.
어젯밤엔 인기가 추락한
꿈에서 깨지 않을 수 있었다면 수면제라도 삼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