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안그라픽스, 2009(초판 3쇄)
설계사무소라는 작은 조직인 만큼 젊은이들을 나쁜 의미의 월급쟁이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된듯이, 즉 ‘누군가 하겠지’, ‘상사가 책임지겠지’하며 남한테 기대거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태도는 허용할 수 없다.
겨울이면 바람이 보인다 싶을 만큼 춥고 여름이면 바람이 통하질 않아 무더웠다.
안이한 편리함으로 기울지 않는 집, 그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생활을 요구하는 가정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간결한 소재와 단순한 기하학으로 구성하고 생활 공간에 자연을 대담하게 도입했다.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가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
누군가가 집을 설계해 달라고 찾아오면, 나는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하며 ‘스미요시 나가야’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러면 대체로 절반 정도는 기가 죽어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즉 별종에 속하는 사람들이 내가 짓는 주택의 건축주가 된다.
스미요시 나가야 이래, 갇힌 영역 속에 자연을 빛과 바람이라는 추상화된 형태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추구해 온 내가 이제는 역으로 자연 속에 건축을 들여보내는 식으로 발상했다는 점에서 ‘TIMES’는 하나의 전기를 이룬 작업이었다.
자연과 도시의 이러한 골을 건축으로 메웠을 때 시야에 떠오르는 것이 사회 비평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주제이다.
현대 사회가 외면하고 밀쳐 낸 것들을 보듬어 내고 그 문제를 부각시키는 건축, 그 장소 그 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건축.
규모가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현실의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문제 제기를 하는가. 중요한 것은 건축의 배후에 있는 의지가 얼마나 굳은가 하는 것이다.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콘크리트의 성패는 건축가와 현장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굳건하냐에 달려 있었다.
보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 두면 그림도 인간과 동일하게 늙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한계가 지어진 시간 속에 두기 때문에 ‘살아 있는’ 그림도 가능할 것이다.
이른바 전례주의라는 말도 있듯이, 위험 부담은 무조건 피하고 평균적이고 무난한 것을 선호하는 행정 측의 소극적 자세가 무제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이용자들에게 아부하며, 이래서는 안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며 애오라지 규제만 하려고 든다. 애초에 무엇을 위해서 짓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 의식이 제대로 박혀 있지 않아서, 이를테면 미술관이라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시설의 구성을 바꾼다는 유연한 발상이 나오질 않는다.
‘나는 건축을 하는 게릴라이다.’ ‘건축주를 교육시켜야 한다.’
“좌우지간 인생은 재미있어야 해. 업무에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일하면서 살아가게. 감동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
요즘 어린이들의 가장 큰 불행은 일상생활 속에서 제 뜻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과 장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이 커지는 도시와 새로움에만 가치를 두고 ‘스크랩 앤드 빌드’를 계속하는 도시. 과연 어느 쪽 풍경에서 인간의 미래를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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