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1-2권,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2009(14쇄/1판1쇄)

 

 

 

 

 

 열한시 반에 전단지 접기를 끝낸 오스카르는 구역을 돌기 시작했다.

 

 가령, 종종 오스카르는 조국을 점거한 적들에 항거하는 정치선전물을 퍼뜨리는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 흉내를 냈다. 그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노부인으로 감쪽같이 변장한 적군들을 경계하며 살금살금 복도를 통과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건물들이 굶주린 짐승이나 입이 여섯 개 달린 용이고, 그가 먹여주는 광고 전단지처럼 생긴 숫처녀의 육체가 그것들의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그가 짐승의 아가리에 쑤셔 넣을 때마다 전단지들은 비명을 질렀다.

 

 

 

 오스카르는 직선 위에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는, 자신이 휘갈겨쓴 글씨들을 보았다. 그게 학교였다. 그것 이상은 없었다. 이런 게 학교란 곳이었다.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학생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곳.

 

 오스카르는 책상 앞에서 일어났다. 숙제는 끝났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할 만한 글자들로 채웠다. 그럼 됐다.

 

 

 

 그는 자갈 포장도로에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세계도 사라져버렸다.

 

 

 

 전염 위험. 병균이 신경계까지 도달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목을 완전히 비틀어버려 몸의 전원을 내려야 한다.

 

 

 

 피아노 위 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 마리아를 그린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예수를 돌보는 마리아는 내가 뭘 잘못해서 이 고생을 하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는 가끔 혼자 이곳을 찾아 묘석 옆에 잠시 앉아, 거기 새겨진 아빠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오늘도 그래서 온 것이었다. 땅 밑의 상자가 아니라, 이름을 위해.

 

 

 

 그는 한 생()을 구원하려고 돌진하고 있었다. 비로 그의 생을.

 

 

 

 그들은 그가 자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시간의 선형적 개념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 인생이 하나의 계획이라고, 미래를 정복하는 꿈이라고 다시 느끼게끔 해야 했다.

 

 

 

 밤은 창문에 드리워진 검은 장막이었다.

 

 

 

 두 괴물 중에서 어느 쪽을 고를래?

 

 

 

 시트를 덮으면 우린 다 똑같았다.

 

 

 

 저 먼 곳에서 그는 누군가가 뺨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오스카르 자신의 뺨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곳, 멀고도 먼 어느 행성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늑했다.

 이윽고 별들만 남았다.

 

 

 

 그 모든 것들의 위에 거대한 나무 십자가와 모던 스타일의 예수가 매달려 있었다. 얼핏 보면 예수는 야유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경찰은 남자가 기자회견 전까지도 검거되지 않을 경우, 그다지 신뢰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대가리가 달려 있는 사냥개, 바로 일반 대중에게 의지하기로 결정했다.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누가 죽었으면 하고 바라기만 해도 정말로 그 사람이 죽는다면. 그래도 안 할 거야?

 

 

 

 여름날처럼…… 귀여운데.

 

 

 

 그는 그녀의 두 눈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그의 깊은 내면에서 꺼낸 낚싯바늘을 그녀 눈동자의 웅덩이 속으로 던져넣었다. 암흑을 헤치고 가 닿기 위해, 그곳으로……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침묵은, 한 사람은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고 건강한 사람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서 침묵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라케, 사랑해.

 라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이 공중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말은 캡슐에 담겨 점점 커지더니 커다란 빨간 담요가 되어 방 안을 둥둥 떠다녔고, 마침내 저 스스로 내려와 그를 덮어주고는 밤새도록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라리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울음소리를 듣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렇게 우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울라고 내버려두는 법도 없다. 이렇게 울면 죽을 것이다.

 

 

 

 살갗이 검게 타며 연기를 내뿜자 침대에서 몸부림치던 그녀. 성기를 훤히 드러내며 배 위로 말려올라가던 환자복. 불꽃이 허벅지에 옮겨 붙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지옥의 교미를 하듯 엉덩이를 위아래로 들썩거리던 그녀와 덜거덕거리던 침대의 금속 프레임. 절규에 절규를 거듭하는 그녀

 

 

 

 머릿속은 참 조용하구나. 마치…… 우주공간 같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