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의 시간
나에게는 자뻑 증세가 있는데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
이 자뻑 증세의 도수는 더 높아진다.
이 자뻑 증세가 주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어떤 스타일의 옷도 다
내게 잘 어울리고 멋지게 느껴지기 때문에
하나의 옷을 고르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매일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없다며
괴로워하는 종류의 사람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선택 어려움증’이다.
날이 흐리고 자뻑 증세가 특히 충만해진 날에는
그 어떤 스타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내 자신에게
화가나는데,
그럴 때면 일부러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옷들을 매치해 입고 나가고는 한다.
예를 들면 수트를 걸치고 츄리닝 바지에
워커를 신거나 하는 식이다.
어떤 스타일도 잘 어울리는 내게
소화하기 어려운 일종의 핸디캡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길기 때문에
아침에 충만하던 자뻑수치가
점심 먹은 뒤부터 점차 감소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날 자신의 꼴(수트+츄리닝+워커)을
직시하게 되고
안개 낀 신비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안개가 걷히고 빛이 나자
쓰레기와 오물과 인종차별정책으로 더렵혀진 바다가
드러나는 것처럼 내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날 하루가 자신 없어지고
빨리 집으로 도망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