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을 보았다 장님은 날 못 보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님을 보았다.
신림역이었다.
1년 내내 전철을 이용하다 보면 서너 번쯤은 마주치는
얼굴이 눈에 익은 장님 아주머니였다.
급한 약속이 있었는가 보다
막대기로 땅을 두드려대며
다른 장님을 향해 외친다.
000 못봤어?
000 못봤어?라는 말을 장님이 쓸 때
그 말의 의미는 복잡하고 잘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눈이 멀게 된다면
난 무엇이 가장 보고 싶을까?
그리고 눈 먼 내가 가장 보고 싶을 그것을
지금 난 얼마나 자주 보고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다.
생각만큼 그렇게 어머니가 그립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못 참을 정도로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어쩔 줄을 모르겠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는데 손발을 묶여 긁을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럴 땐 나도 장님이다.
누군가의 어머니를 동냥질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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