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side A, 박민규, 창비, 2010(초판 1)

 

 

 

 

 

근처

 

달이 너무 크고 밝아 모북리 초입에서 차를 한번 세워야 했다. 안구眼球란 걸 지닌 모든 짐승을 얼어붙게 만드는 달이었다.

 

 

 

 모든 물감을 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소한 삶의 순간들도 결국 죽음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처연한 달이 스스로를 깎고 있는 깊은 밤이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자세를 유지한다. 개켜둔 걸레처럼 말없이, 꼼짝 않고 마당을 지켜본다.

 

 

 

 

 

 

누런 강 배 한 척

 

 

 다 왔습니다 부장님, 이를테면 그런 느낌으로 퇴직을 했다.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

 

 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세상에 지식인知識人이 어딨겠는가, 지식인知食人이 있을 뿐이지.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연명延命의 불을 끄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집 안을 잘 정동하고 필요한 짐을 모두 실었다. 달칵, 문을 잠그던 그 순간 지나온 삶의 모든 것을 밀봉하는 기분이었다.

 

 

 

 

 

 

굿바이, 제플린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나려는 것이었다. 애꿎은 사이드미러를 흘기며 나는 눈물을 참았다. 무슨 놈의 이런딸기우유처럼 달콤한 꿈이 다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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