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 나갈 때마다

 

 

기어코 또 문자 한 통 왔다

지난 주에는 이메일로도 왔다

시안* 송년회 오라고 참석하라고

몽둥이 감춘 선비님들 비단웃음처럼

안 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말들이 왔다

나는 이 극존칭의 배려가 무섭다

시인님 시인님 만나서는 원국암마 좀 자주자주 나오라는 말이 다 무섭다

누가 나가고 싶어 안 나가나

나가기 싫으니까 안 나가지

상고 나온 어머니 시 한편 외우신 적 없고

아버지 여전히 이명박 씹새 빠돌이에

한숨에 벌레 섞어먹고 사는 가난뱅이신데

내 동생 백오십만원 빌려가선 작은형 이백오십만 더 빌려달라는데

내 주변 시인 하나 없어 그런가

옷차림 갖고 뭐라 하는 꼰대 교수도(그래 너 시 잘쓴다 잘났다)

다 늙은 중아줌마들이 선상님 선상님 우리 선상님하며

노시인 주변에 앵앵대는 모습도

한 두번은 재밌지만 그 후로는 재미 없는데

도인들 스님들 같은 분들이 로얄 샬루트 드시는 꼴도

좀 꼽긴 꼬운데

연 끊고 소식 끊자니 내 주변 시인 하나 없는데

가로등아 가로등아 한 겨울 벌레 없어 심심한 가로등아

넌 얼마마다 한번씩 등을 가는지

너 등 한 번 갈 적마다 한번씩 모임 나가면 어쩔까?

너 한 번 나가듯 내 정신 한 번 나갈 때마다

캄캄한 틈에 나가 반달처럼 꾸벅꾸벅

조아리다 오면 어떨까?

 

 

 

 

 

*계간 시전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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