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늄의 밤, 하나무라 만게츠, 씨엔씨미디어, 1999(초판1쇄)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뇌수의 한구석에서, 기도란 반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 번갯불처럼 번득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성교와 마찬가지로 반복이 기도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는 종교의 진정한 쾌락을 이해해가고 있었다. 자아 없는 반복. 그것이 최고다.
시스터 테레시아. 나는 내 몸에 붙어 있는 촉수를 딱딱하게 하는 것이 피가 아니라, 미쳐버릴 만큼 처참한 그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종족도 다른 당신의 주근깨를 보고 발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윤회 따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지옥에 의존해야 하는 그리스도교가 정말 한심하다. 사랑이 모든 것이라면, 지옥 따위는 없어도 괜찮지 않은가. 왜 종교라는 것은 이런 비열한 성격을 가지는 것일까.
나체와 피를 주제로 한 십자가상이 쉽게 변태 성욕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교회는 생각지도 못했단 말인가. 나는 알고 있다. 이 예수의 모습에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자위에 열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여자뿐만이 아니다. 남자도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도 그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버지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건 인간이 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이야. 신이 인간을 창조하신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신을 만들게 한 데 있는 게야. 창조주이신 신이 인간을 만들었으므로, 인간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신을 알 수가 없지.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신은 인간의 척도에 맞게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것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언어일 뿐이지. 알겠느냐, 로오. 일본어로 번역된 소설은 당연히 일본어 소설이라는 사실을.”
“여하튼 수녀는 아직 완벽한 동정입니다. 그러나 나는 미래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고백된 죄는 행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과 신은 존재하지 않는 죄를 용서한 셈이 됩니다. 용서의 비적이 성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이 미래의 죄는 선생님의 용서라는 비적에 의해 신으로부터 면책 특권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놓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겁니다.”
타인이 흘리는 눈물은 그것이 절실하면 할수록, 비애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소년이라 불리는 나이 때는 그런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감수성을 낭비할 수 없는 계절이다. 여유가 없는 것이다. 타인의 슬픔이 직접 가슴에 닿아온다. 마음을 마구 헤집는다. 또한 슬픔에 감응해버린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은 나약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남자란 한 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남자가 되고 싶어서 오로지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소년인 것이다. 소년은 과민한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화를 낸다. 그래서 눈물샘을 자극받아 격한 감정에 휩싸인 아이들은 만아를 더욱더 잔혹하게 대하는 것이다.
공부도, 운동도, 이것도 저것도, 노력 없이 적당히 처리해왔다. 또한 동료들을 리드해왔다. 그러나 이날 밤, 나는 노력했다. 힘을 냈다. 미우라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노력의 의미를 알았다. 마음속에 새겼다. 앞으로의 인생, 절대로 노력만은 하고 싶지 않다고. 노력이란 패배자의 면죄부다.
중2의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며 어떤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들겨 맞으면, 어느 날 밤, 가슴 속에서 쨍- 하는 은밀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쨍!’은 비유적인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어떤 것이 열리는 소리다. 그리고 손이 아니라 입으로 미우라를 애무한다.
“글쎄요. 증명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믿느냐, 믿지 않느냐. 신에 대해서는 그런 태도 외에는 전혀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신은 모호해. 네 말대로 유물론자는 신이 없다고 목이 빠지게 외쳐대지. 그렇지만 신이란 언어를 적용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 모든 걸 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신이라는 놈은, 그리고 그 신의 표현이랄 수 있는 언어라는 놈은 너무 강력해. 핵 병기 따위는 상대도 안 돼. 용서라는 것이 바로 승리니까. 모호하기 때문에 만능인 셈이지.”
“그것이 만능이며 전능한 신이란 건가요?”
“아냐, 그 정체는 언어. 어디까지나 언어. 신의 실태는 아마도 언어의 만능에 있을 거야. 언어는 현실을 해석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냐. 현실 자체가 아니므로, 뭐라고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사람은 언어를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고 보니 번뇌의 개라는 비유가 있었던가. 번뇌는 개처럼 사람에게 달라붙는다. 웃기는 일이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번뇌는 나의 애견이다.
나는 아스피란트의, 또는 시스터 테레시아의 몸 속에 나의 촉수를 담그고, 아스피란트의, 시스터 테레시아의 생선조림처럼 딱딱해진 피의 저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감지하려고 발버둥치다가 그 편린을 안 다음,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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