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음을 수출하고 싶은 카피라이터 

 

 

몹시 조용한 카페에서 홀로 책을 읽고 싶어

1시간 반을 차를 몰고 왔는데

바로 앞집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전 암스트롱의 달이라는 카페였죠.)

커피를 홀짝이며

내 책 속.

그러니까 뉴욕의 밤거리는

때 아닌 공사 소음에 시달렸습니다.

화려함에 한껏 부풀려진 뉴욕 거리에

난데없이 경박하게 땅 깨는 소리가

우드드드드 우드드드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석 같은 사내 필립 말로의 무드도, 하드보일드의 미쟝센도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공사 소음은 당해낼 수 없었죠.

카페 앞 쌈밥집 바닥 공사하는 소리에,

제 일요일의 설계도가

기초부터 무너져내리는 순간이기도 했구요.

예전에 그런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습니다.

로미오가 창가에서 줄리엣에게 고백하는 로맨틱한 순간

강한 바람에 줄리엣의 치마며 로미오의 가발 등이 모두 훌렁 날아가버리는 visual.

이 장면을 어린이 세계 명작 시리즈 삽화처럼 스케치했고,

카피는 시속 200km KTX에서 로미오를 읽다.” 였습니다.

(아이리버 e-book/어워드용 프로젝트/지면)

썸네일도 어디 있을 겁니다.

뉴욕 어디쯤 휴지통 속에.

만들고 부수고 깨고 다지는 와중에

모든 게 다 임시 구조물 같단 생각도 해봅니다.

가족이나 연애, 우정, 직원과 회사의 관계도 어쩌면 그런 걸까요?

바다 위에서 배를 짓고,

성층권이 바다처럼 펼쳐진 고층 빌딩을 짓고,

건축 기술만큼은 달나라 새나라 부럽지 않게 발달해갑니다.

그렇다면 이제

공사 소음을 최소화한 건설공법 개발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뉫!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지?

아무 소리도 못들었는데?

이런 느낌으로 뭔가를 만들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카피 공사는 제 마음에 흡족합니다.

아무리 쌓고 부수고 다시 쌓아도

이 공사는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니까요.

이 건설 자재들은 전부

제 안에서만 부숴지고 망가지고 짓이겨지니까요.

다만 그렇게 만들어져 세상에 나아가,

더 좋은 풍경을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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