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세 조각 카피라이터
봄이 오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봄꽃, 봄옷, 봄처녀, 봄나들이, 봄공기, 춘곤증, 그리고 “진짜 타투야?”라는 물음.
따뜻한 날씨에 소매를 걷으면 6년 째 팔목에서만 날고 있는
제 조그만 타투가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독수리 모양 직경 4cm 정도의 작은 타투인데요,
족보도, 상징도, 예술성도 없는 그냥 7만원 주고
홍대 부근 불법 시술소에서 한 타투입니다.
흥미로운 건, 몸에 타투가 있는 사람들과
단지 마음 속에만 타투가 있는 사람들의 멘트가 매번 차이를 보인다는 겁니다.
아마도 제 타투의 조잡성 때문일 텐데요.
타투를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새는 무슨 뜻이냐, 좀 유치한 듯 하다,
기왕이면 더 멋진 걸로 하지 등등의 말을 합니다.
반면 이미 타투를 지닌 사람들은 그냥 언제 했냐, 어디서 했냐 정도만 묻지
디자인이나 타투의 생김새에 대해 품평하거나,
심지어 그 의미 조차도 그닥 묻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투를 하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의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디자인이나 생김새에 대해 논하는 건 -
넌 눈이 좀 촌스러운 것 같애, 넌 얼굴 선이 좀 별로야,
기왕이면 짙은 눈썹으로 태어나질 그랬니, 하는 것처럼 -
불편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타투가 일상화되지 않은 나라에선, 타투의 디자인보다는
타투를 한다는 행위가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 의미는 저마다 다른 색과 소리를 지닐 테구요.
사실은 타투가 두 개 더 있습니다.
심장 위에 하나,
등과 옆구리쪽으로 사선으로 하나.
평소엔 보이지 않는 그 두개의 타투는 모두 레터링인데요,
둘 다 제가 직접 썼습니다.
문구도 제가 썼구요,
글씨체도 제 글씨체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타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 두 개는 2년쯤 전 제 감정이 가장 유치해진 순간 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소름 돋을 정도로 유치합니다.
유치의 극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새벽까지 혼자 술 마시고 엉엉 울다가
다음날 아침 술 깨기 전에 한 거니까요.
카피라이터는 어떤 면에서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타투와 광고의 닮은 점을 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의미의 존재 이유가 많이 다릅니다.
때로는 제 몸에 지울 수 없는 타투를 새기던 그 순간처럼
지면에 카피를 새겨가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 심장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타투를 새겨넣고 싶다고 욕망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 욕망이고, 제 진심입니다.
광고주와 기업이라는 알듯 말듯한 의사체에 빙의되어 카피를 쓰다 보면,
사실 이들의 진심은 드러내기보다 감추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1등이 되고 싶어, 돈 벌고 싶어, 수익 내고 싶어, 성공하고 싶어, 소비자의 돈을 빼먹고 싶어,
라는 진심이 느껴져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또 실제로는 어른의 메시지고 어른이 쓴 카피인데도
아이들의 입을 빌려서 괜히 귀여운 척 순수한 척 얘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아기 제품 관련 카피를 몇 일을 끙끙거리며 쓰다가
오직 저를 위한 페이지를 한 장 만들어 이렇게 썼습니다.
"아기들이...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아기를 위한다는 수 백 개의 제품과 수백 개의 광고들을 뒤지면서
카피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는 동안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아이의 탈을 쓴 수 백 명 어른들의 환영이 보여 땀이 삐질했습니다.
물론 그 중엔 34살 먹은 아기, 저도 있었습니다.
왠지 아기들이 행복해지기 어려워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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