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열린책들, 2009(보급판2쇄)
「고독합니다.」 그가 고단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의 고독은 일종의 열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지도 제법 오래되었는데, 저는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늘 선생님이 독특한 의무감을 느끼고 계신 것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독단적이지도, 그렇다고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 그런 의무감이요. 스스로에 대한 의무감, 자신의 의지로써 선택한 의무감……. 너무나도 독특한 것이어서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이 시대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낯선 느낌을 주지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이 시대에서 뭘 의미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잘 알지도 못하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후작님.」
「그게 바로 선생님만의 특징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 말입니다…」
「신의 존재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신가 봅니다.」
「별 관심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극한까지 견디시는 분이시지요. 그건 무책임하고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신사답다고 할 수가 없지요.」
「아! 선생님께서도 8월의 일요일보다 더 차분한 모습으로 말등에 올라타 계시던 카스티예호스에서의 그분 모습을 보셨어야 했는데…….」
그는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았다. 모르긴 해도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다지 형편없는 모양새로 죽는 것도 아닐 것 같았다. 언젠가 노인 수용소에서 시들시들 죽어가고, 마지막까지 침대 밑에 숨겨 놓았던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성직자들이 빼내 가는 꼴을 당하고, 또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평생 단 한 번도 제대로 믿어 보지 않았던 하느님에게 거부당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이렇게 가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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