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헤르타 뮐러, 문학동네, 2010(1판1쇄)
어머니가 기침을 하자, 머리가 흔들렸다. 목에 자글자글 주름살이 잡혔다. 어머니의 목은 짧고 굵직했다. 그 목도 한때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전 언젠가는.
새로 풀 먹인 시트에서 처음 자는 날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내 피부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어느 날 아침,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텅 빈 바람을 가르고 간신히 날이 밝았다. 신문은 오지 않았다. 기차가 눈 속에 꼼짝없이 갇혔고, 신문은 기차 안에 놓여 있었다.
집배원은 이 마을 저 마을로 오직 눈만 배달했다.
나이와 함께 코밑 수염이 자라고 콧구멍과 사마귀에서 털이 난다. 몸에 털이 나고 젖가슴이 납작해진다. 그러다 완전히 늙으면 남자들과 비슷해지고 결국 죽을 결심을 한다.
아버지의 텅 빈 머릿속에서 장난치던 촛불이 꺼졌다.
거기에는 육중한 나무문과 두꺼운 맹벽盲壁이 있다. 아주 높이 달린 작은 창문들에는 유리가 알록달록하다. 성당에서도 거리에서도 그런 색깔은 찾아볼 수 없다. 미사가 거리로 새어나가도 안 되고, 거리가 성당 안으로 들어와도 안 된다.
수의사가 자전거에 훌쩍 올라타더니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페달을 밟았다. 그릇 밖으로 부풀어 넘치는 할머니의 빵 반죽처럼 수의사의 엉덩이가 안장 양옆으로 축 처졌다. 자전거가 수의사의 무게에 눌려 신음했다.
어머니들은 울기 위해 신발에서부터 뻣뻣한 두건의 술장식에 이르기까지 검은색 일색으로 차려입는다. 그러고는 주름에 둘러싸여 흔들흔들 걸어간다.
나는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혀가 입 안을 틀어막아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팔은 군데군데 소똥이 튀고, 초록색 토마토 이파리 물이 들고, 기름이 묻은데다가 온통 파란 자두 얼룩투성이였다. 온 여름이 거기 묻어 있었고, 의사는 그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의사가 할머니의 팔에 새로 깁스를 해주었다.
여름이 내게 무성한 풀밭의 진한 꽃향기 세례를 퍼부었다. 야생 아르메리아가 살갗을 파고 들었다. 나는 강을 따라 걸으며 팔에 물을 끼얹었다. 살갗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아름다운 늪지대였다.
무성한 풀숲에 누워 나를 땅속으로 졸졸 흘려보냈다. 나는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강을 건너와 내 안에 가지를 치고 이파리를 흩뿌리길 기다렸다. 버드나무들이 이렇게 말하길 기다렸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늪이야. 우리 모두 너를 찾아왔어. 크고 늘씬한 물새들도 데려왔어. 물새들이 네 안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지저귈 거야. 그래도 너는 울면 안 돼. 늪은 용감해야 하거든. 네가 우리랑 같이 지내기로 한 이상 모든 걸 참아내야 해.
<검은 공원>
꽃병에 빽빽이 꽂혀 있는 꽃다발이 마치 덤불처럼 보인다. 숨막히게 아름답고 인생처럼 마구 흐트러져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나는 층계의 위트*였고, 내 사무실은 손수건이었습니다.
* 원래는 '방을 나선 뒤, 층계에서 뒤늦게 떠오른 생각'을 뜻하지만, 현재는 운명의 아이러니나 우스꽝스러운 태도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글을 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보다는 거짓이 얼마만큼 성실하느냐입니다.
글을 쓸 때는, 텍스트에 깊이 침잠할수록 그 이율은 지출도 되고 수입도 됩니다. 글로 쓰인 것은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갈수록, 체험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더 많이 드러냅니다. 오로지 낱말들만이 그것을 발견해낼 수 있습니다. 낱말들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낱말들은 체험을 기습적으로 덮치는 곳에서, 체험을 가장 잘 반영해냅니다. 낱말들이 너무나 강압적이어서, 체험은 그 낱말들에 매달려야만 와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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