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 나무의철학, 2012(14)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전망이 좋은 방이네!" 엄마는 직접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호수를 볼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있으면서도 그렇게 외쳤다. 그러다가 방금 전보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동안 전망 좋은 방에서 살기를 바랐는데......."

 

 

 

 나는 그곳에 앉아 엄마에게 더 이상 무덤을 돌보기 위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인즉, 이제 아무도 엄마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머릿속 유일한 생각은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정신은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담고 있는 티없이 맑은 수정 유리병이었지만, 육체는 그와 정반대였다. 그냥 박살난 유리잔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팠다.

 

 

 

 그렇게 관목숲 사이에 매달려 있던 그날, 피가 뚝뚝 흐르는 손가락을 감싸 쥐고 혹시나 소가 다시 돌아올까 들리는 모든 소리마다 겁에 질려 있던 그날,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직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었고 그 두 가지도 근본적으로는 결국 같은 것이었다. 내가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거나 원래 가고자 한 방향으로 앞으로 가는 것.

 

 

 

 심장만 빼놓고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건 오직 음식과 물, 그리고 이 배낭을 좀 내려놓는 일이었다.

 

 

 

 1930년댄지 40년댄지 어느 프랑스의 과학자가 말이야. 원숭이 새끼들을 잡아다가 그림을 그리도록 가르쳤다고 하더군. 거 왜 미술관 같은 데 가면 볼 수 있는 심각한 그림들 있잖아. 예술작품들 말이야. 그걸 계속해서 보여준 다음 연필하고 종이를 쥐어줬다지.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원숭이 한 마리가 그림을 하나 그리긴 그렸는데 그게 지가 본 예술작품이 아니었대. 놈이 그린 건 자기가 갇혀 있는 우리의 쇠창살이었다더군. ! 자기가 갇혀 있는 우리라니! , 그게 바로 진실이지, 안 그렇소?

 

 

 

 하지만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일은 전혀 없을 터였다. 내가 배운 대로, 이 세상은 결코 장난 같은 건 치지 않는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빼앗아가고 다시는 되돌려주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었다. 나는 정말로 등산화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무척 행복해 보이는데. 이게 세 사람이 내게 한 말의 전부였다.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행동했다. 엄마가 죽고 난 뒤에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려 했다. 슬픔에는 표정이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내리막길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막 완성한 털실 스웨터의 실을 잡아 풀기 시작해 다시 원래의 털실 뭉치로 되돌리는 작업 같았다. 하지만 실제 PCT를 걷는 일은 스웨터를 짰다 풀었다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다 잃게 되는 그런 여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 등산화로 인한 의욕이 한풀 꺾이고 대신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새로 얻은 등산화도 내게는 이전과 별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새 등산화는 그저 내 발을 새롭게 괴롭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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